배우 이종석은 유쾌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금발로 탈색한 머리 스타일과 “점심은 드셨냐”며 먼저 질문을 던지는 붙임성 있는 태도까지 이종석의 모습은 영화 속 80년대 충청도 카사노바 소년 중길이 21세기 서울로 넘어온 듯 유연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그럼에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묻자 불안함과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주변사람들 반응이랑 관객 반응은 다르니까요. 그렇지만 주변사람들은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만으로 위안이 돼요. 새로운 것을 했고, 괜찮다고 하니까요. 시술 시사 때 처음 봤는데 스태프들을 보니 아무 반응이 없더라고요. 제 입장에서는 ‘뭐지?’ 하고 있었는데 언론시사회가 끝나고 나서 저랑 가까운, 데뷔 때부터 같이 한 스타일리스트가 ‘내 새끼 대견하다. 잘 했다’라고 문자를 보내줬어요. 저는 그것만으로 위안이 되던데요.”
‘피끓는 청춘’ 이전 이종석은 ‘관상’과 ‘코리아’ 등의 영화에서 선배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에 비해 최근작인 ‘노브레싱’과 ‘피끓는 청춘’은 또래 배우들이 함께 힘을 모은 작품들. 작품에 임하는 마음이나 현장의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종석은 “또래들과 함께 하면 편한 게 있지만 선배들과 하는 게 경험치가 빨리 쌓이는 것 같다”고 정리했다.

“근무 환경 자체가 너무 다르니까요. 사실 ‘관상’의 경우 불편한 것 보다는 압박감이 들었어요. 함께 하는 작품에 흠집을 내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있어 심적으로 되게 불안했어요. ‘관상’은 작년, 재작년 초까지 찍었는데 한 작품이 끝나고 보면 사람이 보이는 것도 다르고 느끼는 것도 다르잖아요. 개봉을 앞두고 계속 ‘어떡하면 좋지?’ 걱정했죠. 영화가 나왔을 때는 선배들 사이에서 나만 연기 톤이 다른 것 같아 땀을 흘리며 보고 자책도 많이 했어요.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으니까요.”
‘노브레싱’에서 그 유명한 ‘샴푸 신’(극 중 이종석은 유리에게 다가가 ‘샴푸 냄새 좋다’라는 대사로 관객들의 원성(?)을 산 바 있다) 이야기를 꺼냈더니 “제발 말씀하지 말아 달라. 소름이 돋는다”며 한껏 몸을 웅크렸다. 그래도 어린 팬들은 그 모습을 좋아해줬다고.
이번 영화에서 이종석은 그간의 능력자 소년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조금은 ‘찌질’하고 촌스런 바람둥이 역에 나섰다. 이미지 변신에 대한 갈증이 없지는 않았을 터. 돌아보면 이종석은 늘 다른 역을 해왔지만 멋지지 않았던 적은 없다. 중식이 되기로 한 이유가 뭔지 물었다.
“제 딴에는 지금까지 다른 캐릭터들을 했왔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보는 분들 입장에선 크게 볼 때 똑같은 걸 한다고 느끼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늘 교복을 입으니 그렇게 느끼셨을 수도 있고. 저는 신경 안 쓰고 ‘나의 길을 가련다’고 했는데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노브레싱’을 하면서 느꼈어요. 다른 캐릭터인데 막상 모니터를 보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거에 자극을 받아서 다른 걸 한 번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능력자 소년이 촌스런 중식이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노력들이 들어가야 했다. 생각도 많이 하고 5:5 가르마를 타서 최대한 촌스러워 보이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볼 때 몸을 사린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고, ‘날연기’를 원하는 감독의 주문까지 더해져 고민이 많았다.
“하다가 재미가 붙긴 했어요. 나중에는 어떻게 하면 촌스러울까를 고민했어요. 가르마를 타봤는데 5:5가 촌스럽더라고요. 촬영하다가 모니터를 봤는데 너무 못생긴거예요.(웃음) 그 전에는 그런 게 있었어요. 예쁘게 나와야 한다는 의식 같은 것. ‘날 좀 봐줘’ 이런 거요. 그런데 이번에는 비주얼에 대해 기대를 안 했어요. 그 부분에서 자유로워졌고, 연기적인 면에서도 감독님이 날 연기를 원한다며 디렉션을 주시지도 않았어요. 나중엔 시나리오도 안 외우고 갔어요. 입에서 나오는대로 하니까 애드립도 되던데요? 그래서 ‘아 이 맛에 영화를 하는구나’ 했죠.”
영화에서 이종석은 유독 많이 맞는다. 연약한 바람둥이인 탓에 연적인 광식(김영광 분)에게 두들겨 맞는 중식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낼 정도.
“우리 엄마가 울었대요. 맞는 거 보고. 속상해서 눈물이 나더라고 했어요. 가짜로 맞은 거냐고요? 진짜 맞았죠. 다 진짜 맞았어요. 맞는 장면이 ‘찌질’하게 잘 나온 것 같아요.(웃음)”
금발로 변신한 머리를 칭찬하다 ‘스트레스’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넘어 왔다. 이종석은 연예인이 되고 난 후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다”며 고민을 토로했다. 술도 잘 안 먹고 연예인 친구도 많지 않아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지 잘 모르겠다는 것. 그럼에도 오랫동안 친한 친구인 김우빈과는 자주 연락을 한다며 우정을 드러냈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많이 없어요. 일단 연예인이 아닌 친구들하고는 공감대가 없고 연예인 친구들을 사귀자니 숨기는 게 많아서 진짜 친구가 되기가 힘들어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우빈이랑 가장 친해요. 촬영장에선 둘이 다른 사람 욕도 많이 하고요.(웃음)”
그는 어디에 가든 자신을 반겨주는 열정적인 팬들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부끄럼이 많아 많은 사람들 앞에 서면 숨이 막히지만, 팬들에게는 늘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면 숨이 막혀요. 사실 무대 인사를 돌다가 실신 할 뻔 했어요. 왜 이렇게 힘들까요. 마이크를 잡고 얘기를 하면 되는데 저는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팬들에게) 고마워요. 사인 할 때 멘트라도 하나하나 길게 써주려고 노력해요. ‘너는 도대체 내가 왜 좋니?’라고 묻기도 하는데 그러면 별 이유는 없어요. ‘그냥 오빠 좋아요’ 하더라고요. 그 마음이 고마워요. 고마운데 표현할 방법이 없어요.”

지난해 이종석은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숨가쁘게 달려와 보람은 있지만, 후회되는 부분이 없지도 않을 터.
“그전까지 연기에 대해 너무 심각한 갈증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다작을 한 것 같아요.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모르겠는데 한 작품이 끝나면 또 해야 할 것 같은 갈망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놓치고 가는 게 많은 것 같아 아쉬웠어요. 작품 하나를 끝내면 성숙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훅 늙는 느낌이랄까요. 작년 한 해 배우고 느끼는 게 참 많았지만 올해는 겹치기를 하거나 다작을 하지는 못 할 것 같은 느낌이에요. 조금 더 연기적으로 작품적으로 봤을 때도 완성도가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요.”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2014년의 이종석의 모습이 기대감을 줬다. 마지막으로 교복입는 역할을 언제까지 할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단칼에 "이제 끝"이라고 대답했다.
"이제 끝. 교복으로 보여줄 거 다 보여줬어요. 다섯 작품을 했는데 필모그래피 반 이상이 교복이었는데, 그렇다 보니까 교복으로 할 수 있는 종류의 이야기는 다 했죠. 저는 모두 성격이 달라서 다르다 생각했는데 큰 틀로 직업군 '교복'으로 보이는 거 같아요. 안 입어요. (웃음) 그래도 작품 좋다면 다시 입을 의향이 있죠. '너의 목소리가 들려' 전에도 '교복은 안 해'라고 했는데 안 할 수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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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