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없어서 그렇다? 국내파라서 그렇다? 모두 핑계일 뿐이다. 한국은 멕시코에게 실력으로 완패를 당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국가대표팀은 30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 위치한 알라모돔에서 벌어진 멕시코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알란 풀리도(23, 티그레스)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0-4로 치욕의 대패를 당했다. 설날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가족들과 텔레비전 앞에 앉았던 국민들은 타국에서 들려온 참패소식에 아침부터 고개를 떨궈야 했다.
1-0으로 이겼던 코스타리카전과 달리 홍명보 감독은 새 얼굴을 대거 기용했다. 좌우날개로 노장 염기훈(31, 수원)과 김태환(25, 성남)이 출전했다. 수비진에서 오른쪽 붙박이였던 이용(28, 울산)을 빼고 박진포(28, 성남)를 투입했다. 김태환과 박진포는 A매치 데뷔전이었다.

성남의 우측을 책임지는 김태환과 박진포 콤비는 의욕적으로 국가대항전에 임했다. 자신 있게 오른쪽을 파고들었고, 상대의 슈팅에 몸을 날리길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플레이에 세련된 맛이 없었다. 해외원정경기서 5만 명이 넘는 관중에게 일방적인 야유를 받으며 경기를 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날 알라모돔에 모인 5만 4313명의 관중들 중 1000여 명의 교민들을 제외하면 99.9%가 멕시코 팬들이었다. 이들은 한국이 공을 찰 때마다 야유를 보내고, 레이저 포인터로 선수들 시야를 방해하기도 했다. 한국선수들은 멕시코 한복판에서 경기하는 느낌을 받았다. A매치를 처음 해보는 김태환, 박진포 등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낯선환경을 핑계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 골을 터트린 알란 풀리도 역시 이날 A매치 데뷔전을 치른 햇병아리였다. 풀리도는 멕시코리그 소속팀에서 97경기에 나서 28골을 넣은 신예다. K리그에서만 뛰어본 김태환과 조건은 똑같았다.
멕시코도 똑같이 국내파 위주였다. 유럽파는 ‘떠오르는 샛별’ 디에고 레이예스(22, FC 포르투)가 유일했다. 하지만 그도 22살로 어린데다 소속팀 1군에서 한 번도 뛰지 않은 풋내기다. 우리나라 김진수와 별반 다를 것 없이 경험이 일천했다.

멕시코 선수들은 파워와 개인기에서 한국을 압도했다. 특히 공을 다루는 기술과 공간활용에 대한 이해는 한국보다 몇 수 위였다. 단순히 ‘어린 선수들이 많았다’, ‘국내파 위주였다’, ‘관중이 많아 불리했다’는 갖가지 핑계를 대며 자위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은 멕시코에게 실력에서 완패한 것이다.
평가전은 우리의 장단점을 파악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네 골이나 넣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한 멕시코에게 감사해야 한다. 앞으로 홍명보호는 이날 노출된 문제점을 진단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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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안토니오(미국)=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