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망가지고 싶은 게 아니에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거죠."
미녀스타들의 '한풀이'라고 할 만 하다. 아름다운 외모, 이로 인한 '이미지'가 배우로서는 갑갑한 틀이 되기도 한다. 이런 여배우들이 저마다 이른바 '망가짐'을 통해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망가짐이 아닌 대중에 선보이는 배우로서의 '낯설음'이다.
최근 가장 빛을 본 여배우는 연예계 대표 미녀스타로 불리면서도 대표작이 아쉬웠던 고아라. 그는 tvN 종영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통해 배우로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극 중 주인공 성나정 역을 맡은 그는 캐릭터에 맞게 일부러 살을 찌우고 헐렁한 티셔츠 패션이 부스스한 머리, 여기에 폭풍 먹방을 선보였다. 여기에 '맞나?'를 연발하는 감칠맛 나는 사투리 연기를 보여주며 데뷔 10년만에 활짝 꽃을 피웠다. 극 중 남자배우들이 털털한 여자 성나정을 사랑했던 것처럼 대중은 고아라에 대한 사랑에 불을 지폈다.

현재 방송 중인 SBS 수목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전지현은 좀 더 코믹에 가깝다. 극 중 한 순간 내리막길을 걷게 된 톱스타 천송이는 안하무인에 무식한 면모가 있고, 도도하면서도 허당이다. 정형돈의 랩을 따라하고, 술주정을 부린다. 하지만 망가짐마저도 사랑스러운 전지현 특유의 코믹 섹시를 통해 그는 배우로서 다시 전성시대를 열었다.
물론 전지현의 같은 경우는 이것이 새로운 모습은 아니다. 망가지는 게 아닌, 본인이 가장 잘 하는 연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이런 모습이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는 것은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작인 영화 '도둑들'의 예니콜도 비슷한 맥락의 캐릭터라고 볼 수 있지만, 13년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그는 많은 이들에게 그녀의 출세작 '엽기적인 그녀'의 향수를 자극한다. 전지현의 신드롬 경우에는 익숙함과 낯설음이 혼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영화에서는 한지민 역시 '플랜맨'을 통해 '단아 여신'을 벗어던지고 발랄하고 통통 튀는 연기를 제 입을 옷을 듯 소화해내 호평을 받았다. 극 중 '무계획녀' 소정 역을 맡은 그에게 감독이 예쁜 걸 포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것처럼, 스스로 망가짐을 불사하며 열의를 불태웠다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에 사랑스러움이 가득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현재 방송 중인 MBC 수목드라마 '미스코리아'의 이연희도 빼 놓을 수 없다. 자의 반 타의 반 미스코리아가 되기 위해 당당한 도전기를 펼치고 있는 지영으로 분한 이연희는 첫 장면부터 번진 화장 등으로 망가짐을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듯 했다. "담배는 불을 붙일 때 쪽 빨아야 한다"는 되바라진 멘트를 날리는 우여곡절의 '담배가게 아가씨' 이연희는 더 이상 연기력 논란의 대상이 아니게 됐다.
tvN '응급남녀'의 송지효도 극 중 '구멍' 의사 오진희 역을 연기하며 만취연기, 진상연기 가릴 것 없이 거침없는 열연을 펼치고 있다. 그는 정수리에 스트레스성 원형탈모를 적나라하게 공개하는가 하면 상대에게 욕을 하고 뺨까지 때리며 스스로를 내려놓는다.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심은경은 갑자기 어려진 70대 욕쟁이 할매로 분해 사투리 연기의 절정을 보여준다. "남자는 처 자식 안 굶기고 밤 일만 잘 하면 된다"라는 농익한 대사로 상대역 이진욱을 말문을 막히게 하는 엄청난 그녀다.
이런 여배우들의 몸 사리지 않은 연기에는 코믹함 동시에 진솔한 내면을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SBS '정글의 법칙' 같은 예능을 통해 털털한 이미지를 얻는 여배우들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작품을 통해, 캐릭터를 통해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은 마음이 크다. 소위 이런 '망가지는 연기'가 연기력을 평가하는 새로운 지표가 될 수는 없지만 캐릭터의 갈증을 느끼는 여배우들에게 매력적인 역할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인터뷰를 통해 "한 없이 망가지고 싶다"라고 호소(?)하는 여배우들이 꽤 있다.
젊은 여배우들은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를 통한 제니퍼 로렌스의 변신을 많이 언급하기도 한다. 단순한 망가짐이 아닌, 보는 이들에게 새로운 낯설음을 전하고 싶다는 바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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