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Frozen)이 화제다. 2013년 미국 월트 디즈니 픽처스와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이 3D 뮤지컬 판타지 코미디 애니메이션 영화는 1일까지 국내 누적관객수 544만여명을 기록하며 '쿵푸팬더2'(506만여명)를 넘고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1위작에 등극했다.
'겨울왕국'의 돌풍과 함께 어린이 관객을 넘어 성인 관객들까지 사로잡은 이 영화의 흥행 요인에 대한 분석이 활발하다. 지난 해 해외 유력지들에서 선정한 올해의 영화 중 한 편으로 꼽힌 작품인 만큼 작품성에 대한 호평에는 만장일치에 가까울 정도다.
그래도 이 작품이 디즈니의 혁신이고, 역대 디즈니 공주 중 가장 진화한 형태를 보여준다는 평은 지나치거나 간과한 부분이 없지 않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들 속 10명이 넘는 공주들은 '겨울왕국' 속 안나-엘사 자매들을 능가하거나 오히려 뛰어넘는 세대 반영 여성상들이었다.
'겨울왕국'의 안나는 적극적이고 활달하며 능동적인 공주. '신데렐라'의 신데렐라, '미녀와 야수'의 벨 등과는 다른, 말 그대로 태생부터 공주다. 안나는 영원히 겨울 상태가 된 자신의 왕국을 구하고자 얼음장수와 그의 충성스러운 애완 순록, 그리고 눈사람과 함께 갑작스럽게 고향을 떠난 언니 엘사를 찾아 떠나게 되고 그 모험 이야기가 영화의 큰 줄기다.
안나 뿐 아니라 지금까지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공주들은 본래 마음이 선하면서도 고분고분 얌전한 성격이 아닌, 용감하고 적극적인 인물들이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캐릭터 역시 고전에서 비롯했음에도 비틀기가 이뤄졌고, 점점 다양해졌다. 특히 이들을 관통하는 것은 '꿈의 쟁취'다.
1950년작 '신데렐라'의 신데렐라는 왕자님을 만나겠다는 꿈에 대한 의지를 멈추지 않은 인물이었다. 물론 1세대 공주인 신데렐라는 왕자에게 기대는 '의존형 공주'라는 부분이 있지만 어쨌든 꿈에 대한 열정은 분명했다.
1989년작 '인어공주'의 애리얼은 호기심이 남다른 인어로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보다 더 큰 세상을 갈망했다. 애리얼은 꿈을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는 힘을 지녔다. 애리얼은 왕자를 보고온 후 인간세상에 대한 욕망이 더 커지게 되는데 왕자가 그녀의 시작이 아닌, 다른 세상에 대한 동경이 먼저였음이 중요하다.
1991년작 '미녀의 야수'의 스마트 공주였다. 신분이 공주는 아니었지만 독서광인 지적인 매력의 소유자 벨 역시 자신을 넘어서는 더 큰 세상에 대해 갈망했다. 여기에 희생 정신까지 갖춰 한 남자를 넘어 세상을 변화시켰다.
1995년작 '포카혼타스'의 포카혼타스는 '수동적'이란 말이 뭔지 모를 정도로 사랑과 세상 앞에서 적극적이고 용기 넘치는 캐릭터였으며 자유분방하면서도 정의를 위해 달려가는 옳은 정신을 지녔다.
1998년작 '뮬란'의 뮬란은 디즈니 공주의 재평가를 이끌어낸 캐릭터다. 그간 디즈니 공주들이 모두 왕자와 키스하는 달콤한 결말을 보여줬다면, 용기 넘치고 현명한 공주였던 뮬란의 엔딩은 이례적으로 혼자였다. 그 아래에는 무려 '중국을 구했다(Saved China)'라는 자막까지. 그렇기에 뮬란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훌륭한 디즈니 공주로 평가됐다.
2009년 '공주와 개구리'의 티아나는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레스토랑 개업의 진취적인 꿈을 꾸는 소녀로 디즈니가 만들어낸 최초의 흑인공주였다. 그는 21세기 진취적인 알파걸을 상징했다. 씩씩하고 독립적인 티아나는 자신의 꿈을 향해 한 치의 타협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2010년 '라푼젤'의 라푼젤은 장장 18년을 탑 안에서만 지낸, 인내심 '갑' 소녀로 자신의 탑에 침입한 왕국 최고의 대도를 한방에 때려잡을 정도로 대담하다. 또한 탑 안에 갖혀있으면서도 나약해지지 않고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며 꿈을 놓지 않는다. 라푼젤은 접하지 못했던 낯선 세상에도 작아지지 않고 무엇이든 도전하고 헤쳐나가는 용기를 보여줬다.
많은 작품들에서 '왕자보다 공주가 아깝다'라는 반응을 만들어낸 디즈니 공주들이다. 그렇기에 '겨울왕국'의 안나와 엘사가 '공주의 진화'라고 단정해 말한다면 이전 공주들이 서운할 수 있다. 독립심과 모험심에서는 이미 벨, 뮬란 등이 있었고, 중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등장한 뮬란 공주, 아프리카계 흑인 공주의 센세이셔널한 탄생도 존재했다. 밝고 긍정적인 공주를 말한다면 라푼젤 역시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겨울왕국' 공주들의 성과는 무엇일까? 바로 이 공주들을 다시금 재조명받게 만든다는 것이다. '겨울왕국'의 안나와 엘사를 통해 지금까지 변화돼 온 디즈니 공주들의 혁명적인 발전이나 그 의미가 다시금 관객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또 '겨울왕국' 속 엘사는 흑인 공주와는 또 다르게 소수자들을 상징한다는 의미로도 많이 파악된다. 엘사가 가진 능력은 남들이 갖지 못한 특별하고도 위험한 재능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는 태어날 때부터 지니는 선천적인 기질, 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원천적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의 의미로도 읽혀지는 것이다. 더불어 이런 엘사를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왕자가 아닌 여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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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