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악녀 어쩐지 매력이 있다. 그저 표독스럽기만 한 게 아니다. 어린아이 같이 천진난만한 '베이비 페이스'로 온갖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인간적인 악녀다. '기황후' 백진희는 주인공 하지원이 가진 매력에 도전할 만한, 악녀만의 매력을 갖고 있다.
지난 4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극본 장영철 정경순 연출 한희 이성준)에서는 기승냥(하지원 분)에게 독약 사건의 죄를 덮어씌우려 하는 황후 타나실리(백진희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기승냥은 타나실리가 명령한 내훈강령 100권 쓰기를 끝내 마치고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서고에서 나왔다. 타나실리는 그런 기승냥을 보며 “내 권위에 함부로 도전하지 말라”며 기를 꺾어 놓으려 했다.

그러나 기승냥의 마음은 더욱 복수심에 불타오를 뿐이었다. 그는 조용히 타나실리에게 올가미를 씌울 방법을 강구했고, 다른 후궁들까지 이용해 서서히 자신의 계략을 실행시켜갔다. 기승냥이 택한 방법은 고육지계(자신을 희생해 짜내는 계책)였다. 그는 황후가 후궁들에게 탕약을 지속적으로 먹이는 것을 이용해 독극물 사건을 만들었다.
기승냥의 속내를 명확히 알지 못하는 타나실리는 기승냥을 잡을 방법만을 강구했다. 마침 기승냥이 다른 후궁과 싸움을 벌였고, 이를 기회라 여긴 그는 조례 시간 후궁들을 불러 탕약을 먹였다. 그리고 기승냥이 자신의 탕약을 거부하면 주리를 틀 것이라 생각하며 탕약을 먹으라 명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한 후궁이 황후가 건넨 탕약을 먹던 중 쓰러진 것. 타나실리가 건넨 탕약에는 독약이 없었고, 타나실리는 기승냥이 쓰러진 후궁에게 곶감을 줬던 것을 알고는 이 일의 진범을 기승냥으로 몰아가려했다.
그러나 기승냥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실상 이 모든 일을 꾸민 기승냥은 방송 후반부 타나실리가 건넨 탕약을 먹고 자신이 쓰러지는 반전을 만들어냈다. 기승냥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우려던 타나실리는 또 다시 기승냥의 손바닥 위에서 강력한 한 방을 맞게 됐다.
타나실리는 악한 면에서는 지금까지 등장한 사극 속 악녀들과 다를바 없다. "죄는 짓는 것이지만 죄인은 만드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적을 궁지에 몰아넣는 악독한 모습은 악녀 그 자체다. 그러나 백진희가 표현하는 타나실리는 단순히 악하기만 한 평면적인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솔직한 매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황제와 다른 여인들과의 관계를 질투하며 사랑받고 싶은 여인의 모습을 갖고 있다. 동시에 자신을 탐탁해하지 않는 황태후(김서형 분)에게는 서슴없이 적의를 드러내고 자신의 라이벌인 후궁들의 앞에서는 권위를 앞세워 독재자처럼 군림한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앞에서는 그 의중을 파악할 줄 아는 영악한 딸이기도 하다.
이날 역시 타나실리는 다양한 면모를 선보이며 극에 재미를 더했다. 후궁들이 건넨 선물을 보며 "이건 우리 마하(아들) 기저귀를 해야겠다", "매화틀(화장실)을 해야겠다"며 골탕먹이는 모습에서는 특유의 익살스러움이 묻어났고, 후궁들이 쓰러지며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는 깜짝 놀라는 모습으로 보는 이들로하여금 연민을 불러일으키게까지 했다.
타나실리가 이런 다양한 매력을 발산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그를 연기하는 백진희의 힘이 컸다. 이번 배역으로 처음 악역을 맡은 백진희는 선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악녀 연기를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어색할 줄만 알았던 백진희 표 악녀는 표독스러움 뿐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으로 주인공 하지원에 대적할 만한 매력을 발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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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