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시절 그는 리그 최고의 불펜 요원이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모두 ‘레전드’라고 불릴 만한 자격이 있다. 그런 그가 이제는 후배들의 자존심 회복을 돕는 일꾼을 자처하고 있다. SK의 새 메인 투수코치가 된 조웅천(43) 코치가 SK 마운드 재건을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선수들과 함께 호흡한다는 대전제 하에서다.
SK는 올 시즌을 앞두고 코칭스태프를 소폭 개편했다. 젊은 코칭스태프들이 전면에 나선 것이 눈에 띈다. 조 코치도 그 중 하나다. 지난해까지 SK 불펜코치를 역임했던 조 코치는 지난해까지 투수코치 임무를 맡았던 성준 코치가 수석코치로 승격함에 따라 이 자리를 승계했다.
조 코치는 1990년부터 2009년까지 1군에서 활약하며 프로통산 813경기 출전이라는 커다란 족적을 남긴 스타 출신 지도자다. 통산 64승54패98세이브89홀드 평균자책점 3.21의 성적을 기록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로는 곧바로 지도자로 변신해 후배들과 함께 호흡했다. 팬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곳인 불펜에서 선수들의 마음과 기술을 어루만졌다. 선수단 내에 신망이 두터운 이유다.

그런 조 코치는 올해 남다른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SK는 지난해 4.1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리그 6위였고 공교롭게도 마운드의 성적은 전체 순위와 딱 맞아떨어졌다. 막강 마운드로 리그를 평정했던 예전의 위용이 아니었다. 4강 재진입을 위해서는 마운드의 자존심 회복이 급선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조 코치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마무리캠프부터 약간씩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SK 선수들은 마무리캠프에서 예년에 비해 많은 공을 던졌다. 훈련 일정에 여유가 생겼던 것도, 몸 상태가 나은 것도 있었지만 조 코치와 선수들이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었다. 조 코치는 “던지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선수들에게 ‘공을 던지면서 느껴라’라고 주문했고 선수들도 이런 방법에 동의했다”라고 떠올렸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는 조 코치와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만든 방식이었다.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지만 선수들은 땀을 흘리면서 보완점을 찾아 나갔다. 몸 상태를 유지하고 안정성 있게 던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힘을 쏟았다. 그 결과 각자 소득이 있었고 SK 투수들도 개운하게 마무리캠프를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상승세는 전지훈련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부상자가 속출했던 예전과는 달리 SK 선수들은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하며 순조롭게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있다.
조 코치는 권위를 앞세우는 지도자가 아니다. 선수들과 소통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떤 한 방식을 고집하기보다는 지켜보는 스타일에 가깝다. SK에는 이미 기량이 완성된 선수들이 많다. 이 선수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끌어주면 된다는 것이 조 코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새로운 기분과 함께 심기일전하고 있는 SK가 마운드 재건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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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피칭과 관련해 박정배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조웅천 코치(오른쪽). 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