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에 인상적인 신예가 있다. 배우는 무엇보다 연기만 잘 하면 된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신예를 발견하면 언제나 반갑다. 기본에 더해 자신만의 색깔을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드라마 KBS 2TV '감격시대'와 영화 '수상한 그녀'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김동희다.
'감격시대'의 신승환의 아역 짱돌은 큰 분량을 가졌었다고 할 수 없으나 존재감은 묵직했다. 짱돌을 보며 '저 친구 연기 잘 한다'는 관계자들의 말이 왕왕 들렸고, '감격시대'의 시청자들 역시 눈여겨 봤다. 아역 분량이 끝나고 하차했지만 드라마의 기반을 잘 닦는 데 한 몫한 셈이다.
여기에 500만명을 넘게 동원한 '수상한 그녀'에서도 그를 발견할 수 있다. 짱돌과 그가 맡은 드래곤이 동일인물이라고 생각 못 할 수도 있다. 역시 비중은 크지 않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은 '버스 안에서 그 쌍거풀'이라고 하면 '아!'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감독님이 직접 오디션을 보시고 드래곤 역할을 제안하셨어요. 원래 드래곤은 무게감이 있고 굉장히 거만하고 잘 생긴 그런 느낌이었는데, 제가 오디션 때 바꿔서 했거든요. 그 느낌을 보시고 '아 그것도 괜찮다'라고 생각하며 캐스팅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사실 스스로는 '이렇게 (연기)해도 될까' 고민이 많았어요. 촬영하기 직전까지도 너무도 중요한 신이었기 때문에 고민이 상당했죠. 그래도 그냥 제 나름대로 분석하고 표현해봤는데 그게 감독님께는 나름의 센세이션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하."

실제로 영화 속 드래곤은 70대 나문희에서 갑작스레 20대로 돌아간 심은경이 처음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확인케하게 되는 인물이다. 이런 게 비중을 떠난 존재감이다.
심은경과의 호흡이 궁금했다. "심은경 씨와는 진짜 재미있었어요. 그 장면을 사실 10시간 넘게 촬영했거든요. 버스가 베이스캠프를 기점으로 한 바퀴를 도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고요. 은경 씨는 처음 봤는데 정말 작품 캐릭터에 대한 생각이 많이하더라고요. 완벽한 프로였죠. 얘기도 많이 나누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준비를 많이 하는 배우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그런 배우랑 같이 연기를 하니 당연히 너무 재미있게 할 수 있었어요."
심은경의 혼신을 다한(?) 때리는 연기 덕에 귀에서 피가 나기도 했다. "더 좋은 컷을 만들기 위해 몇 번에 걸쳐 찍다 보디까 귀에서 피가 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소문 있잖아요. 현장에서 피 보면 잘 된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피 나왔다, 우리 영화 대박나겠다'라고 했죠. 은경 씨가 굉장히 미안해 했는데, 더 세게 때렸어도 상관없었어요. 그런데 정말 영화가 잘 됐네요. 뿌듯합니다!"
'맞는 연기'의 달인이 되겠다는 농담을 던졌다. '수상한 그녀' 뿐 아니라 '감격시대'에서도 유난히 맞는 신이 많았기 때문이다. 주위에서는 '왜 이렇게 많이 맞냐'라고 묻기도 했다고. 그런 사람들에게 본인은 "난 그 드라마에 샌드백이야. 그래야 돼 짱돌은"이라고 대답했단다. "짱돌이 맞아야 정태(곽동연)가 살았어요."
하지만 사실 앞으로 그에게 더 화려한 액션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20대 초반 액션 스쿨을 다닌 적이 있으며 격투기를 1년 정도 했었다. 격투기로는 대회에 나가 2등을 한 적도 있다. 소위 말하는 액션 연기 '다찌신'을 배워놓은 게 있단다. 맞는 연기도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어린 연기자들과 또래 모습을 자연스레 연기한 것도 놀라웠다. 이에 그는 동료 배우들에게 그 공을 돌렸다. "(나이가)문제가 될 줄 알았는데, 문제가 하나도 안 되더라고요. 오히려 그 친구들 때문에 저를 더 어리게 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친구들이 정말 잘 했어요."

잠깐 그의 필모그래피에 대해 짚어보자면, 영화 '남자사용설명서'에 이어 '수상한 그녀'가 영화로는 두 번째 작품이고, KBS 2TV '사춘기 메들리'로 시작해 드라마로는 '감격시대'가 주요작이다. 데뷔를 한 지는 2년 여정도가 됐지만 연기를 시작한 것은 20살 때부터였다. 연극 경험이 좀 있냐고 묻자 "무서워서 못 했다"라는 이색(?) 대답이 돌아왔다.
"내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무서웠어요. 부딪혀 볼 만도 한데 그런 부분에 앞서 무언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두려움이 크게 왔거든요. 기회는 정말 많았는데 스스로가 기본을 못 보여준자면 나서지 말자였어요. 사실 짱돌이나 드래곤 역도 무서웠어요. 막상 오디션 볼 때는 그냥 하는데, 제안이 들어오면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겁 부터 나는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선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아요. 뛰어들고 노력해야죠. 이 두려움이 제겐 자극제입니다."
두려움이 많은 배우. 하지만 괜한 겸손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그는 연기자 지망생들에게 연기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손사래치며 "아는 스승님이 가르치는 학원에서 후배 연기자들에게 기초 훈련 정도만 알려주고 같이 연기 공부를 공유하는 거에요. 전 그저 조교나 서포트하는 정도죠. 기초적인 것만 알려주는. 가르친다기 보다는 도와주는 편이 맞겠네요."
1988년생인 그에게 "남자 배우는 서른부터 시작인 것 같다"라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나 역시 주위사람들한테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말한다"라고 맞장구친다. "연기자로서 저는 지금 옹알이하는 정도에요. 걸음마는 서른이 지나고부터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급함이 없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재미있게 하고 싶어요."
선배 연기자들의 인터뷰 기사를 꼼꼼히 읽으며 항상 배우로서 마인드를 다진다는 그는 "좋은 작품, 좋은 캐릭터로 많이 소통하고 싶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존경하는 많은 배우들 중 롤모델은 특별히 이성민으로 꼽았다. 주연 같은 조연, 반대로 주연이면서도 옆의 배우들을 서포트하는 배우. 상대방을 더 부각시켜 줄 줄도 알면서 존재감을 잃지 않고, 어떤 역할 어떤 상황에서 잘 스며드는 배우란 이유 때문이었다.
"물불 안 가리고 작품을 하고 싶어요. (특별히 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요?) 캐릭터를 열어두고 연기를 하는 스타일이라 특별히 선호하는 역할 같은 것은 없어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무수히 많은 캐릭터들이 있는데, 어찌됐건 김동희가 녹아들어가 제 개성과 색깔을 담아 색다르게 표현하고 싶은 바람은 있어요. 그럴 자신도 있고요. 연기자 선배님들이 '진정성'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 역시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가짜로 하고 싶지는 않아요. 8000~9000원이 큰 돈은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작품을 보기 위해 그 돈을 낸 분들에게 실망을 주고 싶진 않아요."

그에게 배우로서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 것 같냐고 물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모르겠네.."라는 작은 대답. 짧은 숨고르기 후 그는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모습인 것 같다. 그거 빼고는 겸손 발언이 아니라 정말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진심이 묻어나왔다. 이어 덧붙인 말. "깊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인간 김동희가 아니라 배우 김동희로서 작품을 통해 좋은 메시지와 따뜻한 감동을 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겸손하면서도 배우로서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돋보이는 그에게 "그래도 이 캐릭터는 좀 나와는 안 어울리겠다, 라고 생각되는 역할이 있나"란 장난 섞인 돌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답. "김탄(상속자들 주인공), 구준표(꽃보다 남자 주인공). 이런 건 좀 어렵지 않을까요. 연기자로서 욕심을 내면 안 되는 부분을 아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구준표 역할을 갈망하면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에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엄청나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죠."
그는 김우빈, 이현우, 신구, 임주환, 고창석, 조달환, 정만식 등이 출연하며 기대작으로 급부상한 김홍선 감독의 차기작 '기술자들'에 캐스팅됐다. 극 중 김동희는 자동차 개조 전문가 털보(조달환) 무리 중 츄리닝 역할을 맡았다. 대사 대신 표정과 행동으로 전달하는 캐릭터라니, 그가 보여줄 새로운 모습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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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수상한 그녀' 스틸,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