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그때라…”
한 가지 질문에 윤희상(29, SK)이 손가락을 펴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접는 손가락과 함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다”라고 웃어 보인 윤희상은 “2006년 7월이었다. 어깨 수술 후 재활을 하고 있을 때다. 군대를 가야하나, 한참 방황하던 시절이었다”며 과거를 떠올렸다. 윤희상의 시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촉망받던 우완 투수였던 윤희상은 프로 데뷔 후 이렇다 할 전기를 마련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아픈 오른쪽 어깨였다.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어깨 통증에 공을 잡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큰 마음을 먹고 수술대에 올랐지만 그 후로는 더 혹독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재활은 힘겨웠고 주저앉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도 “어깨 수술을 하려는 후배들은 말리고 싶다”라고 할 정도다.

그렇게 방황하고 있을 때, 윤희상에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힘들 때 기대 쉴 수 있는 소중한 존재였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윤희상의 생각도 깊어져갔다. 그 사람을 보며 “성공해야 겠다”라는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그런 노력이 끊임없이 되풀이된 결과 윤희상은 화려하게 날아오를 수 있었다. 2012년 10승을 거뒀고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이제 윤희상이라는 이름 석 자가 없는 SK 마운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렇게 성공한 윤희상은 지난해 9월 14일 큰 용기를 냈다. 평소 조용한 성격인 윤희상이 수많은 관중들이 운집한 문학구장에서 공개 프로포즈를 한 것이다. 윤희상의 눈빛이 향한 한 여인은 방황했던 2006년 7월, 그 때 운명처럼 나타나 윤희상의 어깨와 가슴을 어루만져준 이슬비 씨였다. 자신을 문학구장에 다시 설 수 있게 만든 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프로포즈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14일 백년가약을 맺었다.
8년의 시간 동안 한결같이 자신의 곁을 지켜준 아내를 위해서라도 윤희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확실히 예전과는 달라진 마음가짐을 느낀다고도 했다. 윤희상은 “책임감이 많이 생긴다. 행동 하나 하나가 조심스러워졌다”라고 털어놨다.
달라진 마음가짐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겨우 내내 꾸준히 훈련을 하며 몸 상태를 끌어올린 윤희상은 SK의 플로리다 1차 캠프에서 쾌조의 컨디션을 선보였다. 8일 열린 팀의 네 번째 자체 홍백전에서는 2이닝 3탈삼진 무실점의 완벽투로 그 순조로운 과정을 증명하기도 했다. 경기를 지켜본 한 관계자는 “가운데 몰리는 공조차 없었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에이스 자리를 향한 본격적인 발걸음이다.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끝낸 윤희상에게 2014년 목표를 물었다. 그러자 윤희상은 잠깐 생각하더니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아내에게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는 마운드 위에서도 공히 해당되는 목표일 것이다. 집안에서나, 그리고 마운드에서나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윤희상이 힘찬 출발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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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