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팬들은 30번을 달고 뛴 외국인 투수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맷 랜들이다. 뜻밖의 허리 부상으로 유니폼을 벗었지만, 랜들은 두산에 몸담고 있던 4시즌 중 3번이나 두 자릿수 승리를 올렸다.
특히 2008년(9승)을 제외하면 2005년부터 12승-16승-12승으로 3년 연속 10승 이상을 팀에 선물한 랜들은 통산 49승 32패, 평균자책점 3.41의 준수한 성적을 남겼다. 통산 49승은 두산의 역대 외국인 투수들 중 최다승 기록이다. 다니엘 리오스는 두산(43승)에서보다 KIA(47승)에서 더 많이 이겼다. 현재진행형인 더스틴 니퍼트(38승)가 아니면 당분간 이 기록의 주인공은 바뀌기 힘들다.
하지만 30번의 추억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았다. 시작은 랜들의 후임으로 온 좌완 후안 세데뇨였다. 한때 마이너리그에서 유망주였던 세데뇨는 2009년 두산에서 4승 7패 1홀드, 평균자책점 5.70으로 좋지 못했다. 2010년에는 LG에서 뛴 뒤 메이저리그를 거쳐 돌아온 레스 왈론드에게 30번을 줬지만, 왈론드 역시 7승 9패, 평균자책점 4.95에 그쳤다.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만으로 재계약을 맺을 수는 없었다.

2011년의 라몬 라미레즈와 페르난도 니에베는 더 심했다. 라미레즈는 정규리그 경기에 등판하지도 못하고 그해 리그에서 가장 빨리 퇴출된 외국인 선수로 기록됐다. 라미레즈를 대신한 페르난도도 3승 6패 6홀드, 평균자책점 6.09로 전임자들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지난해 개릿 올슨과 데릭 핸킨스도 정규시즌 중에는 마운드에 힘을 불어넣지 못했다.
랜들 이후 핸킨스까지는 거의 모두가 잔혹사에 포함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외가 있었다면 2012년 마무리 역할을 했던 스캇 프록터가 전부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름을 남겼던 프록터는 2012 시즌 4승 4패 35세이브, 평균자책점 1.79를 기록했다. 프록터는 35세이브로 프로야구 외국인 투수의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도 갈아치웠다.
그러나 프록터 역시 수차례 접전 상황에서 불안을 떨치지 못해 재계약에 실패했고, 지난 시즌 두 선수를 거쳐 올해 30번은 크리스 볼스테드에게 돌아갔다. 한국을 처음 경험하는 볼스테드에게는 니퍼트를 뒷받침하는 역할 외에도 두산이 가진 30번 외국인 선수의 악몽을 깨야 하는 중책도 주어졌다.
이전의 30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뭐니뭐니해도 역시 메이저리그 경력이다. 볼스테드는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35승 51패, 평균자책점 4.94를 찍었다. 지금까지 두산 소속 외국인 선수 가운데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선수가 바로 볼스테드다. 이외에도 207cm의 장신으로 팀 동료 장민익과 함께 리그 최장신이라는 점 또한 특징이다.
볼스테드는 이미 지난달 미국 애리조나에서 있었던 첫 불펜피칭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좋은 신체조건에서 나오는 공에 권명철 투수코치도 땅볼을 많이 유도할 것 같다며 만족했다. 이에 더해 화려한 메이저리그 경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국내 야구에 적응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남은 기간 동안 몸을 더 만들어 실전에서 보여줄 일만 남았다. 랜들 이후 프록터를 제외하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던 많은 30번 외국인 투수들이 모두 실패했지만, 메이저리그 성적만 놓고 보면 볼스테드는 '진짜가 나타났다'는 말이 아깝지 않은 선수다. 볼스테드가 장신에서 나오는 시원시원한 공으로 팀의 30번 잔혹사를 끊어낼 수 있을지 여부 또한 두산의 이번 시즌 성적을 좌우할 주요 변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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