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크! 아웃!”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속초에서 열렸던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 체력훈련에 이색적인 장면이 등장했다. 모든 심판들이 운동장에 서서 기본적인 ‘제식훈련’에 땀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갓 심판위원이 된 젊은 심판부터 2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심판들까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기본동작을 숙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인물이 그 대열을 ‘매의 눈’으로 바라봤다. 도상훈(66) 신임 KBO 심판 위원장이 그 주인공이었다.
사실 지루한 훈련이었다.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도 위원장은 “고참급 심판들은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웃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모든 뜻을 이해하고 열심히 했다는 것이 도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는 도 위원장이 이 훈련에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이해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바로 초심으로의 회복. 도 위원장은 금이 가고 있는 심판들의 신뢰를 다잡기 위한 첫 걸음이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도 위원장은 말 그대로 ‘평생 심판’이다. 무려 33년 동안 심판 외길만을 걸어왔다.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아마추어 때부터 심판복을 입었다. 2003년 KBO에서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심판의 길을 걸었다. 심판복을 입을 수 있다면 무대를 가리지도 않았다. 사회인야구에서도 심판을 봤고, 아마추어 야구나 리틀야구에서도 ‘스트라이크 콜’을 내렸다.
이런 다방면에서의 경험은 도 위원장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심판이라는 조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을 제공했다. 도 위원장은 최근의 심판 불신 시대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발 벗고 나서겠다고 밝혔다. 교육도 교육이지만 비디오 판독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심판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 차근차근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도 위원장을 OSEN이 만났다.
-심판위원 워크샵이 있었다고 들었다. 새해 첫 공식행사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 산행을 위주로 체력훈련을 했다. 2시간 정도 되는 코스였다. 그 후에는 운동장에서 체조나 러닝을 통해 체력을 쌓았다. 오후에는 오락 비슷하게 편을 나눠 축구도 하면서 체력훈련을 많이 했다. 물론 체력훈련도 체력훈련이지만 정신적인 부분을 많이 강조했다. 특히 기본자세를 강조했다. 20~30년 심판을 해도 기본자세라는 게 있다. 한편 언행이나 자세 등 공인으로서 지켜야 할 일들이 있다. 그런 부분에 중점을 두고 시간을 보냈다.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 사실 처음에 연락을 받았을 때는 어깨가 무거웠다. 나도 오래 심판을 했지만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하지만 그 후에 팀장급이나 후배 심판들이 ‘우리가 도와드릴 테니 우리를 위해서 희생을 좀 해달라’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굳혔다. 나의 개인적 영달보다는 후배가 잘 되는 일이라면 내가 해야겠다는 취지로 승낙했다.
-업무 파악은 됐나
▲ KBO에서 정년퇴임하기 전에 업무를 많이 도왔던 경험이 있다. 현재 심판 파트 내에서 일을 보는 총무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그래서 이제는 업무 파악이 거의 다 됐다. 특별히 조직이 바뀌는 것은 없다. 알려진 대로 2명이 떠난 자리에 지난해 퓨처스리그 심판들이 1군에 투입되는 것 외에는 변동 사항이 없다.
-다들 동생같고 아들같은 후배 심판들이다. 하지만 엄할 수밖에 없는 위치다. 기본과 초심을 많이 강조한다고 들었다
▲ 맞다. 심판으로서도 그렇지만 인생 선배로서도 후배들에게 멘토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속초에서 체력훈련을 할 때 기본자세부터 가르친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다. 스트라이크와 아웃은 거의 같은 제스쳐지만 한 경기에도 수 백번 이상을 하지 않나. 20년을 한 심판들도 심판계에 입문할 때 그 자세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다. 고참 심판들이 처음에는 잘 이해를 못했는데 나중에는 그것을 이해하고 열심히 해줬다(웃음).
-심판을 본 지 33년이 조금 넘었다. 정말 긴 시간인데
▲ 2003년 KBO에서 퇴직을 하고 1년 정도 공백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후로는 계속 심판을 했다. 사회인야구로 주말에 활동했고 경기도 야구협회에서 4년 정도 심판을 했다. 2011년부터 2년은 리틀야구연맹에서 심판 이사를 맡아 후배들과 함께 했다. 심판 공백은 없었던 것 같다. 심판들을 지도도 하고, 때로는 나도 같이 뛰고 말이다.

-아마추어 야구나 리틀야구 이야기를 듣고 싶다. 10년 넘게 치열한 1군 무대에서 콜을 하다 아마추어에서 심판을 봤을 때 느낀 게 적지 않았을 것 같다.
▲ 맞다. 난 아마추어 심판을 하다 프로로 갔고 정년퇴임 후 다시 아마추어로 돌아갔다. 특히 리틀야구에 있었던 2년 동안 많은 보람을 느꼈다. 아무래도 정신적으로는 조금 덜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자 같은 어린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정확한 판정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이들은 정직하면서도 예민하다. 승패도 승패지만 지고 나서 아이들이 받는 상처가 있다. 그 상처가 심판의 오심으로 생겨서는 절대 안 되겠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심판의 오심은 아이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 지금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가장 큰 느낀 점이다.
-현재의 심판학교에 많은 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 KBO에서 현직에 있을 때 2군 조장을 6년 정도 했다. 1998년부터 퇴임할 때인 2003년까지 했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퓨처스 팀장인데, 심판학교 교육도 교육이지만 기안부터 했다. 당시에는 KBO 주관으로 심판파트에서 심판학교를 운영했다.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4주 정도 기간이었다. 대구 심판양성 프로그램에서도 6년 정도를 활동했다. 수료시킨 인원만 400명 정도가 된다.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심판 판정에 예민해진 시대다.
▲ 사실 정년퇴직을 하고도 후배들에 관심이 있으니 많이 지켜봤다. 작년에 퓨처스팀장으로 와서도 경기를 봤다. 솔직하게 얘기해 우리가 할 때보다 지금 후배들이 훨씬 더 잘 본다. 다만 중계가 세세한 것까지 잘 되다보니 후배 심판이 더 보기 어려운 측면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오심에 핑계를 대고 이유를 대는 것은 아니다. 환경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WBC 등 국제무대에서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 심판들의 수준이 높다고 한다. 일본 기자들도 한국 심판들이 꼿꼿하게 서 판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 놀라더라. 일본 심판들은 포수 뒤에 숨는다고 말이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오심은 나온다.
▲ 외국 심판 이야기가 나오니 하는 말인데 아마추어 있을 때 국제대회도 많이 가봤다. 냉정하게 이야기해 한국 심판들이 잘 본다. 국제대회에 가면 미국, 일본, 호주, 필리핀 등 여러군데서 심판들이 오는데 한국 심판들에게 묻는 경우도 많다. 나도 젊은 심판들이 가르쳐 달라고 졸졸 쫓아다닌 적이 있었다. 한국 심판들의 수준은 높다고 본다.
-그렇지만 지난해 오심들이 나와 신뢰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비디오 판독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비디오 판독에 대해서도 말이 있다. 난 심판위원들에게 ‘오히려 잘 된 것일지 모른다’라고 얘기한다. 비디오 판독 자체가 심판도 오심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는 것 아닌가. 비디오 판독을 해서 잘못된 판정을 번복해주면 더 깨끗한 것이 아니냐. 일부 심판위원들이 거부감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고 설명을 했다.
-심판들이 오심에 대해 대처하는 자세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 인정한다. 미국 사례를 지적하는 글도 많이 봤다. 그런데 미국과는 달리 우리는 야구 문화에서 차이가 있다. 미국은 깨끗이 승복하는 그런 문화가 있다. 우리는 조금 다르다. 분명 심판들의 사과는 바람직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반대쪽에서도 사과를 했을 때 상대가 ‘OK, 끝난 일이다. 앞으로 잘하자’라고 하면 좋다. 그런데 ‘그것 봐라. 우리 죽이려고 한 거 아니냐’라고 나오면 복잡해진다. 그래서 조심스럽고, 예민한 부분이라고 본다.

-심판들도 5인 1조로 시즌 내내 빡빡하게 움직인다. 슬럼프도 있을 것이다. 이는 오심으로 이어진다. 이런 슬럼프를 만드는 열악한 심판 처우도 손을 대야 할 부분이 있다
▲ 작년에 다시 KBO로 와서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그 전에는 문제점을 묻는 후배들이 많이 있었다. 교육을 시켜서 1군에 보냈는데 ‘요즘 이상하다. 스트라이크 하면 타자가 쳐다보고 볼 그러면 포수가 돌아본다’라는 하소연을 한다. 그럴 때마다 문제점을 찾아서 조언해주고 그랬다. 기술적인 문제는 아니다. 심리적인 문제고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세가 흐트러지고 타이밍이 안 맞다 보니 오심이 나오는 것이다. 속초에서 기본을 강조한 것도 다 이와 연관이 있다. 3시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하다가도 1분 동안 다른 생각을 할 때 항상 대형사고가 난다. 후배들에게 '경기 시간 때는 죽었다 생각하고 들어가라'라는 당부를 하고 싶다. 심판 복지 부분은 여러 가지로 사무국과 협의를 할 생각이다. 금년 선발하면 심판위원도 45명이 된다. 후배들을 위해 사무국과 협의를 해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교육도 더 빠른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인데
▲ 교육 관련도 조직 관리의 일부다. 운동장에 들어가서 기본을 지키고 심판을 시작할 때의 그 기분으로 해야 한다. 1군 심판이더라도 잘못된 건 지적하고 좀 더 잘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20년 했다지만 잘못되면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 본인들한테도 자극제가 될 것이다. 기술적, 정신적 부분을 계속 강조해서 오심을 줄일 수 있게끔 하겠다. 그것이 팬들을 위한 길이고 선수들을 위한 길이다. 교육이라고 하면 언제든지 시킬 각오가 되어 있다.
-향후 젊은 심판들의 육성도 중요할 것 같다
▲ 정년퇴직하고 10년 만에 KBO에 돌아와 지난해 퓨처스 육성팀장으로 작년 1년을 했다. 나는 심판 생활을 반 정도를 후배들 지도하는 입장에 있었다. 퓨처스 운영위원들에게 교육과 훈련을 철저히 시켜달라고 당부했다. 당장 내년에 kt가 들어오면 10구단이 된다. 1개 조가 더 필요하다. 대체 요원으로 5명 정도는 집중적으로 교육을 시켜달라고 당부했다.
-향후 심판들의 일정은 어떻게 되나
▲ 이번주부터 미야자키, 오키나와로 나가 각 팀의 연습경기에 참여하며 심판들도 전지훈련을 하게 된다. 3월 5일 대구에 집결한다. 이번 전지훈련에서 각 팀의 투수, 외국인 타자들의 특성, 어떤 공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에 상세하게 서술해서 오라고 지시했다. 5~7일까지 최종 리허설을 하는데 그 때 정보 공유를 해서 보크 등을 일관성 있게 판정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하겠다. 8일부터 시범경기 시작되니 그 때부터는 배정대로 흩어진다.
-심판 생활을 30년 넘게 했다. 심판 생활을 하면서 좌우명이나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첫째도, 둘째도 어느 위치 어느 팀이든 공정하게 보는 게 심판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는 그동안 누누이 강조했던 것, 즉 조직생활, 운동장에서의 집중력, 공인으로서 언행에 유의하고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감독이나 팬들이 ‘야 어제 그 경기 누가 심판봤지?’라고 하는 심판이 가장 좋은 심판이다. 잘 봤다는 이야기도 필요없다. 우리는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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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