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안’ 안현수(29, 러시아)의 성공적인 재기 뒤에는 러시아가 있었다.
안현수는 10일(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서 열린 남자 1500m 결승에서 2분15초062의 기록으로 3위로 골인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은 찰스 해믈린(30, 캐나다)에게 내줬지만, 안현수는 러시아 역사상 쇼트트랙에서 첫 메달을 따내 러시아의 국민영웅이 됐다. 경기 후 푸틴 대통령과 메드베테프 총리가 직접 안현수에게 축전을 보낼 정도였다.
안현수의 메달획득은 러시아 현지에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러시아 일간지 ‘코메르산트’는 12일(한국시간) 동메달을 딴 안현수와 와이드 인터뷰를 가져 관심을 집중시켰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3관왕의 주인공 안현수는 2008년 심각한 무릎부상을 당했다. 이후 네 차례 수술을 받은 안현수는 국가대표선발전을 한 달 앞두고 겨우 복귀했다. 제대로 된 실력이 나올 수 없었다. 결국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출전은 좌절됐다.
안현수는 당시 심정에 대해 “아버지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보셨다.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은퇴 후 코치직을 제안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역선수로 더 뛸 수 있다고 판단한 안현수는 다른 나라로 귀화해 다시 한 번 올림픽에 나가길 원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때 러시아가 손을 내밀었다. 평소 안현수의 기량을 흠모하던 알렉세이 크라브초프 러시아 쇼트트랙 선수협회장이 물심양면 안현수를 도왔다. 재활을 위해 러시아에 들렀던 안현수는 시설을 둘러보고 러시아 귀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귀화절차가 매끄럽지 않자 안현수는 도중에 귀화를 포기했었다. 이때 러시아는 3년이 걸리는 절차를 6개월로 줄이며 국가적으로 안현수를 키웠다고 한다.

동메달을 딴 소감을 묻자 안현수는 “8년 만에 올림픽에 다시 나가 메달까지 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냥 쇼트트랙을 사랑했고, 다시 올림픽에 나가고 싶었다”고 밝혔다.
러시아 매체는 올림픽을 위해 국적을 바꾼 안현수가 한국에서 죄인취급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국적을 바꾼 어려움을 묻자 안현수는 “결코 쉽지 않았다. 단지 쇼트트랙을 사랑했다. 쇼트트랙을 하기에 러시아가 더 좋은 곳이었다”고 대답했다. 한국보다 쇼트트랙을 더 사랑했냐고 묻자 “모른다”며 대답을 피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안현수에게 은퇴 후 국가대표 코치직까지 보장해 준 상태다. 안현수 역시 올림픽만 마치고 다시 한국에 돌아갈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는 “내 생각에 다시 한국에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계속 러시아에서 지낼 것”이라며 은퇴 후 계획을 밝혔다.
한국에서 선수생명이 끝난 것으로 여겨졌던 안현수의 재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이 낳은 영웅을 이제 러시아가 더 잘 보살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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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러시아)=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