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LG 감독에게 가장 암울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OSEN 손찬익 기자
발행 2014.02.14 13: 00

지존의 자리이지만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고독한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프로야구 감독들은 순간순간 희비가 교차한다. 경쟁자들을 제치고 정상에 섰을 때에는 세상을 다 잡은 것과 같은 희열을 맛보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 등으로 팀이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빠질 때에는 홀로 모든 상실감을 이겨내야 한다.
지난 시즌 무려 11년만에 ‘가을잔치’ 진출의 숙원을 이뤄내며 LG 트윈스를 새롭게 이끌고 있는 사령탑 데뷔 3년차인 김기태(45) 감독에게 가장 암울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최근 미국 애리조나 1차전지훈련을 마칠 즈음 만난 김기태 감독은 2년전 이맘때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김 감독은 “감독직을 맡자마자인 2012년 5명의 주축선수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때에는 정말 암담했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줄까하는 생각이었다. 지금도 정말 생각하기 싫은 시기였다”며 고개를 내둘렀다.

김 감독은 그 해 스토브리그서 특급 선수들인 조인성, 이택근, 송신영 등 3명이 FA(프리 에이전트)로 타팀과 계약하면서 빠져나간데 이어 2월말에는 신예 핵심 선발 투수들인 박현준과 김성현이 ‘승부조작’ 사건과 연루돼 제명조치돼 팀이 엉망진창이었다.
김 감독은 “전지훈련 연습경기를 위해 일본 고지로 이동한 날 현준이와 성현이의 소식을 들었다. 정말 하늘이 노랗게 되더라. 공교롭게도 이날 저녁은 사전에 김성근(고양 원더스) 감독님과 식사 약속을 잡아놓은 날이었다. 그런데 정말 몸에 힘이 빠져서 김 감독님과 약속을 지킬 수가 없더라, 감독님께 전화를 해서 ‘오늘은 도저히 식사를 못하겠습니다. 다음에 모시겠습니다’며 정중하게 부탁하고 나가지를 못했다”며 당시의 참담함을 회상했다.
김 감독은 “다음날 운동장에서 김 감독님을 만났는데 ‘뭘 그정도를 갖고 그러냐. 그냥 술 한잔 먹고 잊으면 되지’라며 담담하게 말씀하시더라. 그런데 그 때는 정말 그게 안되더라”며 웃었다. 만약 김성근 감독이 그런 상황을 맞았으면 어떠했을까. 누구보다 예민하고 꼼꼼한 성격인 김성근 감독도 김기태 감독 못지 않게 참담해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수장으로서 마냥 넋만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김 감독은 다시 선수단을 추슬러 준비하고 시즌에 돌입했다. 김 감독은 “당시 차포를 다 떼고 시즌에 들어갔지만 선수들에게 더 똘똘뭉쳐서 ‘우리는 할 수 있다’며 희망을 심어주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다행히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중반까지 상위권을 지키며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하지만 6월말 ‘봉중근 소화기 사건’이 터지면서 선수들의 희망이 꺾였다”며 아쉬움을 곱씹었다. 봉중근 사건만 없었으면 감독 데뷔 첫 해 악조건을 딛고 4강 진출을 한 해 먼저 실현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에 아쉬워했다.
‘최악의 순간’도 무사히 빠져 나와 이제는 LG호를 4강 내지는 우승 후보로까지 꼽힐 정도로 안정된 전력으로 만든 김기태 감독이기에 웬만해선 그를 멈출 수가 없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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