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첫 천만 애니메이션이 탄생하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국내에서도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겨울왕국'은 왜 이토록 한국 대중을 열광시켰을까?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겨울왕국’은 지난 13일 하루동안 602개 스크린에서 8만 0785명 관객을 동원하며 일일 박스오피스 3위에 올랐다. 지난달 16일 개봉 이래 누적관객수는 820만 5088명이다.
'신드롬'이라고 할 만한 이 흥행세를 두고 다른 시선이 존재한다. 우선 '겨울왕국'이 소위 '1000만 감'은 아니고 한국 관객들의 유행에 민감한 확 끌어오르는 면모를 보여준다는 의견이다. 물론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흥행이 이 애니메이션이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매력이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긴 하나, 북미를 제외하고 영국에 이어 한국에 전세계 흥행 2위인 것을 생각하면, 한국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는 놀라울 정도다.

'겨울왕국'은 스토리나 캐릭터에 있어 어떤 혁명을 보여준는 작품은 확실히 아니다. 사실 역대 디즈니 공주 캐릭터와 비교했을 때 '겨울왕국'은 여성성을 좀 더 획득한 엘사라는 여왕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것이 차별점이지 안나는 기존 공주 캐릭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궁극적으로 왕자가 아닌 가족의 선택이었다는 점은 사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아주 새로운 면모는 아니다.
하지만 그 만큼 쉽고 모범적인 내용으로 인해 영화는 어린 관객들까지 완벽 흡수했다. 앞서 중국을 구하고 엔딩을 이례적으로 키스가 아닌 홀로 남은 모습으로 장식한 뮬란('뮬란')이나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레스토랑 개업의 진취적인 꿈을 꾸는 디즈니가 최초 흑인공주 티아나('공주와 개구리')보다 사실 말랑말랑한 내용이다.
'겨울왕국'을 관람하기 위해 극장을 찾은 한 30대 여성은 "아이들을 데리고 '겨울왕국'을 보러 갔다"면서 "'겨울왕국'을 보러 간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이 모두 다 '겨울왕국'을 봤다고 말하더라. 친구들이 학교에서 하루 종일 '겨울왕국'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OST를 부르는 등 '겨울왕국'을 보지 않고는 말이 통하지 않을 분위기더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필람무비' 분위기의 형성은 학생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 사이에서도 형성되고 있는데, 특히 이 영화에 여여(女女) 커플의 관람이 많다는 것은 문화적 충족 욕구가 큰 관객층에게 이 영화가 마땅히 소비해야 하고, 소비할 만한 가치가 있는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을 의미한다.
다른 시선은 '겨울왕국'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또 다른 발전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그것은 옛 것으로의 회귀가 아닌, 고전의 부활이란 점이다.
사실 뮬란, 포카혼타스 등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에 점점 집중해오는 듯 했던 디즈니는 '겨울왕국'을 통해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관능적 여신을 탄생시켰다. 퇴보가 아닌, 나름의 역발상이라고 할 만 하다. 사실 흥행의 중심에 있는 엘사는 포카혼타스나 뮬란 보다 남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비판을 받았던 1세대 공주들인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와 더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선천적인 아픔으로 인해 '난 내 길을 가련다'라고 외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이런 공주 얘기는 오히려 10대 시절 디즈니 공주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이자 클래식 뮤지컬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향수와 호감이 강한 30대 여성 관객들을 자극했다. 기술력에 방점을 찍는 요즘 콘텐츠들에서 벗어나 축적된 고전미를 3D와 결합시켰다.
무엇보다 음악의 힘이 큰데, 유명 작곡가 크리스토프 백을 바탕으로 한 80인조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참여한 OST, 그 뮤지컬 넘버들 속 아름다운 멜로디가 가슴을 울리는 가사는 디즈니 초기 작품들의 웅장한 매력을 회상하게끔 만든다.
실제로 '겨울왕국'은 '음악'과 '향수' 라는 올 겨울 극장가 흥행 코드의 선두에 섰다. 국내에서는 씨스타 효린이 가창한 '렛 잇 고(Let it go)'는 SNS와 온라인 등에서 2차 콘텐츠로 생산 및 확산되며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기막힌 대진운, 단순한 냄비 근성으로 치부하기에는 이 영화의 재관람율이 높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 하다. 이는 자막판과 더빙판, 두 버전의 고른 인기가 한 몫을 하고 있고, 그리고 그 배경에는 역시 '렛 잇 고'가 있다. 이에 대해 소위 '음악 빨'이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엘사 목소리 연기를 하며 이 노래를 부른 이디나 멘젤이 이례적으로 올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라이브로 '렛 잇 고' 무대를 펼친다고 하니, 때로는 영화에서 완벽한 화면의 미장센 보다 귀에 감기는 노래 한 구절의 힘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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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