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을 대표하는 우완 투수들인 윤석민(28, 볼티모어)과 다나카 마사히로(26, 뉴욕 양키스)가 나란히 메이저리그(MLB) 무대에 진출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지구에 속하게 됐다. 비교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 됐다. 어쩌면 윤석민이 자신의 저평가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지난 1월 7년간 1억5500만 달러(약 1643억 원)라는 대형계약에 합의한 다나카는 뉴욕 양키스의 손을 잡았다. 벌써부터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윤석민도 끈질긴 구애를 펼친 볼티모어의 일원이 됐다. 지난해 MLB를 강타한 아시아 투수들의 돌풍에 두 선수도 합류할 태세다. 이미 아시아권에서는 정상급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은 투수들이라 기대는 커지고 있다.
다나카는 현재 C.C 사바시아, 구로다 히로키에 이은 양키스의 3선발 출격이 예정되어 있다. 현지에서는 “그 정도 가격에 3선발이면 반품을 해야 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지만 양키스는 다나카에 큰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윤석민도 볼티모어 선발 로테이션 합류가 유력하다. 4~5선발을 놓고 다툴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볼티모어의 선발 로테이션 뒤쪽은 확실한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많지 않다. 유망주 수준의 선수도 더러 있다. 충분히 해볼 만하다.

다만 두 선수에게 놓인 환경이 녹록치 않다.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격전지다. 당장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보스턴 레드삭스가 이 지구 소속이다. MLB 최고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 저력의 팀 탬파베이 레이스, 화끈한 타격을 선보이는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근래 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하위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전력도 다른 지구 최하위와 견줘보면 훨씬 낫다.
게다가 투수들에게 불리한 구장들이 많다. 오른손 투수들에게는 더 그렇다. 뉴양키스타디움과 오리올파크는 우측 펜스가 상대적으로 짧아 좌타자들이 유리하다. 팬웨이파크(보스턴)도 2루타가 많이 나오는 경기장이고 로저스센터(토론토)는 돔구장의 특성상 뜬공이 잘 뻗는 경향이 있어 홈런공장으로 불린다. 트로피카나 필드(탬파베이)가 그나마 쉴 곳이지만 위안을 삼기에는 탬파베이의 전력이 강하다.
이런 환경 때문에 윤석민을 한 해 앞서 MLB에 진출한 류현진(27, LA 다저스)과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정평균자책점 등의 지표가 있지만 그 숫자들이 투수가 받는 스트레스를 모두 나타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MLB에 진출한 시점이 달라 적응에 대한 문제도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다나카라는 좋은 비교대상이 생겼다.
다나카와 윤석민은 출발점이 다르다. 계약 규모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고 그만큼 기대치에서도 차이가 난다. 다나카의 부담이 클 법하다. 하지만 처해 있는 환경은 윤석민도 만만치 않게 어렵다. 다나카는 몇 경기 못 던져도 자리가 위태해질 일은 없지만 윤석민은 당장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유망주들이 차고 넘친다. 시즌 초반에는 적지 않은 부담감이 윤석민의 어깨를 누를 것 전망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윤석민이 다나카에 근접한 성적을 낸다면 윤석민 자신의 가치가 확 올라가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는 정도의 투수가 된다면 확실한 보증수표나 다름없다. 위기가 곧 기회로 돌변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19번 만나는 특성상 맞대결 가능성도 시즌 내내 화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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