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는 금액이 적다는 시선이 많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그 정도는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시장 상황과 팀 내 사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윤석민(28, 볼티모어)이 ‘도전’이라는 초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정황도 포착된다.
현지 언론들은 17일(이하 한국시간) “윤석민이 볼티모어의 피지컬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일제히 전했다. 피지컬 테스트는 계약 완료의 직전 단계로 이를 통과했다는 것은 사실상 볼티모어의 일원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행정적 절차가 모두 끝났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입단식도 18일로 잠정 예정됐다. 계약 단계는 오랜 시간이 소요됐지만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로 끝나는 분위기다.
윤석민의 계약 세부 내용은 다소 복잡하다. 현지 언론에 보도된 것에 의하면 보장금액은 557만5000달러(약 59억 원)다. 2014년에는 계약금 67만5000달러(약 7억2000만 원)와 연봉 75만 달러(약 8억 원)를 합쳐 142만5000달러(약 15억 원)를 받는다. 2015년 보장금액은 175만 달러(약 18억6000만 원), 2016년 보장금액은 240만 달러(약 25억5000만 원)다. 복잡한 이유는 보너스 규정 때문이다. 일정 수준의 등판 횟수를 충족시키면 윤석민은 연간 125만 달러(약 13억3000만 원)를 받는다.

이 금액은 다음해 연봉 산출 기준점에 포함되는 계단식 연봉 계약이다. 만약 윤석민이 올해 보너스를 모두 따내면 다음해 보장 금액은 175만 달러에서 125만 달러가 포함된 300만 달러가 되는 식이다. 윤석민이 보너스 기준을 충족시킬수록 보장금액은 계속 불어난다. 즉 볼티모어로서는 보장금액은 최대한 줄이는 대신 성과에 따라 보너스가 보장금액을 추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잘 하면 많이 주겠다는 식이다.
물론 보너스는 윤석민의 활약 여하에 달렸다. 모두 가져올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때문에 보장금액에 대한 아쉬움이 적잖다. 하지만 상황을 잘 살펴보면 이 금액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프시즌 막판까지 남은 다른 투수들이나 팀 내 선발 경쟁자들의 금액과 비교하면 그렇다.
▲ 메이저리그 계약만으로도 성공?
현재까지 오프시즌에 남은 선수들은 두 부류다. 우발도 히메네스나 어빈 산타나처럼 너무 비싸서 엄두가 안 나는 선수들, 혹은 몇몇 이유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선수들이다. 이 중 후자는 말 그대로 헐값 계약을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두 자릿수 승수가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폴 마홈(LA 다저스)도 1년 계약에 보장 금액은 150만 달러에 불과했다. 대신 윤석민과 마찬가지로 보너스를 크게 걸어 최대 650만 달러를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윤석민의 ‘큰’ 보너스 계약이 아주 이례적이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부상 경력이 있다는 점에서 윤석민 계약의 잣대가 될 것으로 예상됐던 토미 핸슨도 싼 가격에 계약을 마무리했다. 핸슨은 MLB 5년 통산 49승을 올린 투수다. 윤석민보다 더 나은 경력으로 볼 수 있지만 윤석민처럼 메이저리그 계약을 따내지 못했다. 핸슨은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되어야 20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다. 만약 마이너리그에서 뛸 경우 스플릿 계약에 의해 보장 연봉은 30만 달러에 불과하다. 팀이 스프링캠프에서 싼 위약금만 지불하고 방출할 수도 있다.
메이저리그 통산 67승의 에릭 베다드는 최근 탬파베이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 통산 110승 투수인 애런 하랑도 클리블랜드와 역시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 두 투수는 나이가 많다는 점에서 윤석민과는 상황이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선수들이 지금까지 시장에 남은 것만으로도 올해 오프시즌이 얼어붙었다는 증거라는 평가다. 이를 고려하면 윤석민은 막차를 탄 선수치고는 최선의 계약을 했다고 볼 수 있다.
▲ 볼티모어 선발투수 3위 연봉
볼티모어 선발투수들과 연봉을 비교해 봐도 윤석민은 낮은 수준이 아니다. 아직 FA 자격을 행사하기 전 투수들이 많아 전체적으로 몸값들이 싸다. 에이스 크리스 틸먼은 올해 50만8500달러(약 5억4000만 원), 미겔 곤살레스는 50만2000달러(약 5억3000만 원)를 받는다. 버드 노리스가 530만 달러(약 56억 원)로 선발투수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고 있고 천웨인은 407만2000달러(약 43억 원)로 2위다.
전체적인 연봉규모가 적은 팀은 아니지만 선발투수들의 연봉은 MLB에서도 최하위권이다. 당장 윤석민의 올해 보장 금액(계약금+연봉)은 선발 후보 중 3위다. 볼티모어의 동양인 투수 계약 사례와 봐도 윤석민이 계약 규모는 적은 편이 아니다. 볼티모어는 천웨인과 3년 약 1100만 달러에 계약했고 와다 츠요시는 2년 815만 달러에 계약했다. 보장 금액은 적지만 활약 여부에 따라 더 많은 돈을 가져갈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두 선수와는 달리 전 시즌 부상 전력이라는 악재가 있었고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한국프로야구에서 직행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마이너리그 강등 거부권도 손에 넣어 향후 3년간 안정적인 여건에서 MLB에 적응할 수 있다는 점도 호재다. 윤석민으로서는 ‘메이저리그 계약 보장, 선발 경쟁 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고 국내 유턴에 대해 단호한 자세를 보임에 따라 MLB 도전이라는 자신의 초심을 지킨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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