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메달보다 값진 3승' 女 컬링, "우생순 아니어도 괜찮아"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4.02.18 06: 59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아니어도 괜찮아!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이 뜻깊은 도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풀리그 9경기를 마친 한국은 상위 4개팀에 주어지는 4강전 진출 티켓을 손에 넣지 못했지만, 첫 출전한 올림픽 무대에서 메달보다 값진 3승을 거두며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보답을 받았다.
'맏언니' 신미성(36)을 비롯해 김지선(28), 이슬비(26), 김은지(25), 엄민지(23, 이상 경기도청)로 구성된 여자 컬링대표팀(세계랭킹 10위)은 18일(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큐브 컬링센터에서 열린 컬링 여자 라운드 로빈 세션 12 캐나다(세계랭킹 2위)와 경기서 4-9로 패했다.

이미 4강 진출은 좌절된 상황이지만 올림픽 첫 출전인 한국으로서는 캐나다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각오다. 이번 대회서 8전 전승으로 강세를 보인 캐나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것. 하지만 초반 잇딴 득점에도 불구하고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한 한국은 역전패를 허용하고 말았다.
앞선 세션 11 미국과 경기서 11-2로 대승을 거두며 4강 진출의 실낱같은 희망을 밝히는가 싶었던 한국은 미국전 경기가 끝나고 몇 분 후 영국이 개최국 러시아를 꺾으면서 희망이 꺾였다. 라운드 로빈 세션 11이 있기 전까지 4승 3패였던 영국은 이날 개최국 러시아를 9-6으로 꺾고 5승째를 챙기면서 4강 진출 경우의 수가 모두 막혔기 때문이다.
컬링판 '우생순'을 꿈꾼 이들의 목표도 동시에 좌절됐다. 역사도 짧고 저변도 얕은 한국이지만 최근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며 세계 무대에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세계선수권대회 4강에 들면서 올림픽 출전권과 자신감을 1+1으로 얻은 대표팀은 내심 이번 대회에서 '깜짝 메달'의 신화를 기대했다. 대표팀을 이끄는 정영섭 감독은 물론 선수들도 충분히 해볼만한 싸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금메달까지는 아니더라도 4강전에 진출하면 최소 동메달은 노려볼만 하다는 것이 한국의 노림수였다.
이들이 목표로 한 컬링의 우생순 신화는 완성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번 대회에서 분명한 수확을 얻었다.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거둔 3승은 메달보다 값진 결과였다. 올림픽을 계기로 컬링을 처음 접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도 수확이었다. '반짝 인기'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전제가 붙지만, 무관심 속에 스톤과 브룸을 잡았던 이들은 올림픽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
한국 컬링의 환경과 선수들이 품은 이야깃거리는 이들이 스스로를 '외인부대'라고 부르게 할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의 스킵 김지선은 중국으로 컬링 유학까지 다녀왔다. 당시 인연을 맺은 중국 컬링 국가대표 쉬야오밍(29)과 결혼해 이번 올림픽에 함께 참가했다.
예쁘장한 외모로 많은 관심을 모은 이슬비는 고교 때까지 컬링 선수로 뛰었으나 팀이 해체되며 선수 생활을 포기, 유치원 선생님으로 일하며 컬링의 꿈을 접었다. 맏언니인 신미성은 팀을 위해 출산을 미뤘다. 김은지는 다니던 대학교까지 중퇴하고 팀에 합류했다. 정영섭 감독이 이들을 한 데로 모아 '외인부대'를 꾸렸고, 그 외인부대가 올림픽 무대 출전권을 따냈으며 3승을 수확했다. 경기 중계 내내 들려오는 "괜찮아요, 언니!", "헐!"은 이미 '유행어'가 됐다.
이들이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우생순 신화를 재연하지는 못했어도, 우생순 못지 않은 감동을 안겨준 것은 분명하다. 컬링은 컬링만의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다. 소치는 그 첫 걸음일 뿐이다. 이들의 도전이 '우생순이 아니어도 괜찮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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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러시아)=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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