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황정순 "어머니 연기가 달랐다" 회고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4.02.18 18: 26

영화계의 큰 별이 졌다. 원로배우 황정순(黃貞順)이 별세했다. 향년 88세.
황정순은 치매와 지병을 앓아오던 중 17일 세상을 떠났다. 이에 고인의 발자취와 배우로서의 그의 의미를 되새기는 움직임이 크다.
황정순은 1925년 8월 20일 경기도 시흥에서 출생했다. 그는 총 377편(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www.kmdb.or.kr) 기준)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관객들에게 '1960~70년대 한국의 대표 어머니상'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영상자료원(원장 이병훈)은 오는 4월, 시네마테크KOFA에서 “고(故) 황정순 추모 특별전”을 개최하고, 고인의 대표작을 무료로 상영할 예정이다.

여성영화인사전에 따르면 황정순은 40년 극단 청춘좌, 호화선, 성군 등에 입단하여 연기생활을 시작했으며 1941년 허영 감독의 '그대와 나'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에 데뷔했다.
49년 주연으로 출연할 기회를 얻게 돼 '파시'(49, 최인규) '여성일기'(49, 홍성기) 등의 영화에 연이어 출연하게 된다. 이후 50년 4월 중앙국립극장 전속극단 신협에 입단해 '원술랑', '뇌우' 등을 공연했던 그는 51년 1.4후퇴로 극단을 따라 피난을 떠나 국방부 정훈국 공작대 1중대로 편성되어 대구, 부산 등지에서 활동했으며 같은 해 10월 의학박사 이용복과 결혼했다.
52년 환도 후에도 신협에 전속으로 있으면서 번역극에 출연하며 연극에 주력하다가 56년 김소동 감독의 '왕자호동과 낙랑공주'에 조연으로 출연했고 이후 '숙영낭자전'(56, 신현호) '사랑'(57, 이강천) 등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영화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그는 57년 이강천 감독의 '사랑'으로 제1회 한국평론가협회상 최우수여우상을 수상했는데 이것이 영화배우로서 받은 첫 번째 상이라 그 기쁨이 남달랐다고 회고한다.
그는 '첫사랑'(56, 김기), '봄은 다시 오려나'(58, 이만흥), '인생차압'(59, 유현목), '청춘극장'(59, 홍성기) 등에서 개성있는 연기로 갈채를 받았고 '박서방'(60, 강대진), '마부'(61, 강대진), '김약국의 딸들'(63, 유현목), '굴비'(63, 김수용) 등에서 자상하고 다정다감하지만 때로는 엄격한, 아버지상 김승호와 함께 관객의 마음에 깊이 자리하게 된다.
황정순의 어머니 연기는 동시대 누구보다도 깊고 특출난 것이었다고 평가 받는다. 사실 그녀가 자상한 어머니 역만을 맡았던 것은 아니었다고. 64년 '육체의 고백'에서는 모든 밤의 여인들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 이라고 불리는 양공주를 맡아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선보였으며 65년 최은희 감독의 '민며느리'에서는 구박하는 악독한 시어머니 역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냈다.
"같은 모친 역을 해도 한은진과는 대조적으로 표현적이다. 액션 속으로 고이기보다는 밖으로 내는 그것이 황정순양의 연기개성"이라고 당시 영화잡지는 대표적인 두 어머니상을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어머니로 각인시킨 영화는 67년 배석인 감독의 '팔도강산'을 시작으로 한 팔도강산 연작(속 팔도강산(68, 양종해) '내일의 팔도강산'(71, 강대철), '아름다운 팔도강산'(72, 강혁), '우리의 팔도강산'(72, 장일호))이었다.
영화가 빛을 잃어가기 시작하던 70년대 초반부터 TV 출연을 감행해 '딸', '붉은 카네이션'(TBC) 등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71년 극단 동양의 창립공연에 참가해 '소', '여름과 연기, 그리고 바람' 등을 공연하면서 연극인으로서의 길 역시 지켜나갔다.
"영화의식은 투철하지만 무겁고 심각한 역보다는 즐겁기 위해 재미있는 역을 좋아했던 것은 마음 깊숙한 곳에 인생을 유쾌하고 멋지게 살고 싶은 세련된 의도를 지니고 있어서였다"고 회고하는 그는 무대와 스크린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70년에는 서울예전의 이사도 역임하였으며 후진양성을 위해 72년 ‘황정순 장학회’를 설립해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면서 어머니 같은 사랑과 보살핌을 보여주기도 했다.
79년 유현목 감독의 '장마'에서는 원숙하고 관록 있는 연기로 대가다운 면모를 보여주었고 그 이후에는 영화보다는 TV 드라마와 연극에 주력했다. 특히 82년 KBS 드라마 '보통사람들'에서 보여준 인자하고 세련된 신식할머니 연기는 오래도록 기억될 만했다.
빈소는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31호실이고, 발인은 2월 20일이다. 장지는 모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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