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난투사](43)현대 유니콘스의 외국인 타자 프랭클린의 황당한 1, 2, 3루와 홈 질주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4.02.19 08: 22

‘13인의 아해(兒孩)가 도로를 질주하오.’ 이상(李箱)의 시의 첫 구절이다. 질주하는 것은, 그 시에 나오는 ‘아해’만이 아니었다.
삼진을 당한 한 외국인 선수가 덕 아웃으로 발길을 돌리는 대신 헬멧과 배트를 타석에 내려놓은 뒤 느닷없이 1루를 향해 질주한다. 그리곤 1루에서 다시 2루로, 2루에서 3루를 빙 돌아 홈으로 들어오며 슬라이딩 시위를 벌인다. 예기치 못한 그 선수의 돌출행동에 어리둥절해진 주심은 그만 전가의 보도인 “퇴장!”을 외칠 기회마저 놓치고 말았다. 어안이 벙벙해진 것은 심판만이 아니었다. 황당한 장면을 지켜보던 기록원이나 기자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2003년 5월 11일, 봄날이 한창인 일요일 오후.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대전구장에서 열렸던 현대유니콘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막판에 벌어진 일이다. 그 외국인 선수는 현대의 외국인 내야수 마이클 프랭클린(당시 31살)이었다.

현대가 2-5로 뒤지고 있던 8회 초 2사 후, 타석에 들어선 프랭클린이 3-2 풀카운트에서 오석환 주심이 제 6구째를 스트라이크로 선언하자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돌연 그 같은 기이한 행동을 보인 것이다. 김재박 현대 감독은 덕 아웃에서 프랭클린의 ‘이상한 가역반응’을 보고선 “어어, 쟤 왜 저래.”하면서 그저 쓴 웃음을 지을 따름이었다. 
내야수인 프랭클린은 외국인 투수 다리오 베라스가 부진(1승 4패)하자 대신 영입한 타자였다. 트리플A 출신인 프랭클린은 2002년 시즌 도중인 7월에 현대에 입단, 7월 31일부터 3루수로 출장했다. 첫 해 성적은 49게임에 나가 14홈런 30타점, 타율 2할7푼6리로 그런대로 쓸 만 했다. 그래서 2003년에도 재계약했으나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게다가 심판 볼 판정에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이며 항의가 잦아 현대 구단 내부에서도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다. 결국 그 사건이 결정적인 빌미가 돼 6월을 넘기지 못하고 퇴출(6월 23일)됐다. 그가 그해에 남긴 성적은 38게임에서 10홈런, 28타점, 타율 2할2푼1리로 보잘 것 없었다.
 
프랭클린은 시즌초반부터 기대치에 미흡하다보니 일찌감치 퇴출설이 떠돌았던 터. 당시 현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김재박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그런 행동은) 선수 본인이 판정에 납득하지 못한데다 누적된 불만이 터진 것이다. 프랭클린은 말썽을 많이 부렸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잘랐다. 판정 항의가 잦아 주의도 주고 했는데 제 스타일로 밀어붙였다. 혼자 그렇게 뛰어 도니까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심판들한테 시위를 한 것인데…. 실력도 뛰어나지 않았고, 저는 잘 하는 걸로 생각했겠지만 성적도 안 좋았고. 한마디로 팀에 어울리지 못했다. 적응이 (한국야구에) 적응이 안 됐다. 제 스타일대로 막 해버리고, 그래서 몇 번 경고도 주고 참고 지켜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내보내게 된 것이다.”
현대는 그해 한국 프로야구 정상에 올랐다. 1996년에 현대 사령탑에 앉았던 김재박 감독은 1998년에 첫 우승을 일궈낸 뒤 2000년, 2003년에 이어 2004년에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프랭클린을 내친 다음 대체 선수로 데려온 브룸바가 활약을 제대로 해내 전화위복이 됐다.
그 당시 김재박 감독은 외국인 선수들에게 일부러 자리를 마련해 불고기도 사주는 등 한국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프랭클린에게도 친근감을 갖게 하려고 그의 부인과 함께 식사도 같이 했다.
“(적응시키려고)여러 얘기를 해줬다. 외국인 선수들은 아내의 말을 중시하지 않는가. 나중에 들으니 부인이 뒤에서 조종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약물설은 사실 무근이다. 심판 판정에 납득을 못하니까 그런 시위를 한 것이다. ‘반 먹 튀’선수라고해도 과언 아니다. 아마 연봉도 나중에 천천히 줬을 것이다. 그는 ‘이상한 선수’였다.”(김재박 감독)
프랭클린에 대한 시각은 당시 현대 구단 홍보팀장이었던 이성만 씨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이성만 씨는 “(프랭클린이)그 사건을 일으키고 난 얼마 뒤에 퇴출됐을 것이다. 한국야구에 대한 부적응이 컸다. 심판들의 볼판정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기대치에도 미흡했다. 구단이나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도와줬다.”면서 “아마도 그 때는 자신이 퇴출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던 터여서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다. 소심한 성격의 선수였고, 부인이 간섭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부인이 미국으로 돌아가길 원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사건 사흘 뒤인 5월 14일에 상벌위원회를 열고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고 판정을 우롱하는 행위(벌칙내규 7항 및 가중처벌)’를 했다는 이유로 프랭클린에 대해 이례적으로 벌금 300만 원과 5게임 출장정지의 중징계를 내렸다. 당시 심판팀장이었던 김호인 심판과 오석환 주심에게도 ‘선수의 불미스러운 행위에 대해 적절한 조치 불이행(야구규칙 9.01(d) 의무 불이행)’ 책임을 물어 각각 벌금 100만 원을 매겼다.
당시 보조 기록원으로 그 경기를 지켜봤던 윤병웅 KBO 기록원은 “기억이 날듯 말듯한데, 그 당시 주심이 퇴장을 안 시켜 ‘저 정도면 퇴장을 시켜야 하는데’하는 생각을 했다. 현장에서 아무런 조치를 안 해 기록지에는 사건에 대한 아무런 명시가 안 됐을 것이다. 주심이 보고만 있었기 때문에 심판위원회 자체 평가에서도 지적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프랭클린의 벌금은 관행과는 달리 곱다시 선수 자신이 물어내야했다. 이성만 씨는 “선수의 돌출행동인데다 팀을 위한 행동도 아니었고 오히려 팀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행위였기 때문”이라는 풀이를 덧붙였다.
2014시즌, 외국인 타자들이 다시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 등장했다. 프랭클린 같은 유난을 떠는 선수가 다시 나올지도 모른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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