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여왕’ 김연아(24)의 압도적인 연기에 러시아 관중들도 홈 텃세 대신 박수로 응답했다.
김연아는 20일(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서 기술점수(TES) 39.03점 예술점수(PCS)35.89점을 받아 총점 74.92점을 기록, 현재 1위에 올라있다. 빙질 논란에도 불구하고 무결점 클린 연기를 선보인 김연아는 경기장을 찾은 한국팬들은 물론, 러시아 홈팬들의 박수까지 이끌어내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김연아는 단체전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이날 처음으로 실전 무대를 치렀다. 소냐 헤니(노르웨이, 1928·1932·1936), 카타리나 비트(동독, 1984·1988) 이후 첫 번째 올림픽 2연패를 노리는 김연아는 이번 대회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이었지만, 단체전에서 보여준 러시아 홈 관중의 ‘텃세’는 우려의 목소리를 불러일으켰다.

러시아 홈 관중들은 자국 선수들에게 보내는 열렬한 환호 외에도 다른 선수들의 연기를 방해하는 소음과 야유로 악명이 높았다. 단체전은 물론 페어스케이팅과 아이스댄스에서 보여준 이들의 응원 매너는 김연아에게도 악조건으로 작용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 관중들은 피겨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북과 부부젤라까지 동원해 열렬한 응원을 펼쳐 논란이 됐다. 페어스케이팅의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팀이었던 독일의 알리오나 사브첸코-로빈 졸코비 조가 연기를 펼치는 내내 시끄러운 소음이 경기장을 뒤덮었고, 이들이 점프에 실패하자 환호성까지 쏟아졌다. 피겨스케이팅 경기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다.
한 술 더 떠 축구장에서나 볼 수 있는 ‘부부젤라’가 동원될 확률이 높아 더욱 문제가 됐다. 미국 NBC의 닉 맥카벨도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에 “경기장 앞에서 관중들에게 부부젤라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연기를 소화해야하는 피겨스케이팅에 어울리지 않는 응원도구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날, 우려했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러시아 선수들이 등장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극성스러운 러시아 관중들도 김연아의 연기를 집중해서 지켜봤고 아낌없는 찬탄의 박수를 보냈다. 김연아의 아름다운 연기에 경도된 러시아 관중들은 시끄러운 소음 대신 박수를 보내며 ‘피겨여왕’의 러시아 강림을 뜨거운 환호로 맞이했다. 여왕의 존재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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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러시아)=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