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기’의 도전자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6, 러시아)도, ‘와신상담’한 도전자 아사다 마오(24, 일본)도 김연아(24)의 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김연아는 20일(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서 기술점수(TES) 39.03점 예술점수(PCS) 35.89점을 받아 총점 74.92점을 기록, 1위에 오르며 기분 좋게 프리스케이팅을 치를 수 있게 됐다.
소냐 헤니(노르웨이, 1928·1932·1936), 카타리나 비트(동독, 1984·1988)의 뒤를 이어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는 김연아는 대회 시작 전부터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김연아에게는 2년 가까운 공백이 있었지만, 그 사이 여자 싱글 전반적으로 압도적인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가 나타나지 않으며 춘추전국시대에 가까웠다. 결국 4년 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친 아사다 정도가 김연아에게 도전할 선수로 손꼽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회 초반 열린 단체전에서 리프니츠카야가 두각을 나타내며 새로운 도전자로 등장했다. 러시아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리프니츠카야는 쇼트프로그램 72.90점 프리스케이팅 141.51점을 받아 총점 214.41점으로 러시아의 단체전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리프니츠카야의 등장은 트리플 악셀에서 잇딴 실수를 범하며 흔들린 아사다를 위협했다. 뿐만 아니라 홈 텃세가 더해지면 김연아에게도 도전해볼만하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피겨스케이팅 경기장에 부부젤라까지 등장할 정도로 열정적인 응원을 퍼붓는 러시아 관중들의 열기에 아사다가 평정심을 잃고 흔들린 것처럼, 김연아도 실전 무대에서 흔들릴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올림픽 디펜딩 챔피언은 그런 우려 섞인 시선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피겨스케이팅을 처음 시작한 후 17년 동안, 외롭게 싸우는 법에 익숙해진 김연아는 러시아 관중들의 홈 텃세도, 패기 넘치는 리프니츠카야의 도전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흔들린 것은 도전자들이었다. 리프니츠카야는 마지막 트리플 플립에서 실수를 범하며 착지에서 넘어졌고,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의 악몽을 떨쳐내지 못했다. 자신에게 쏟아진 기대를 이겨내지 못한 두 사람은 리프니츠카야 5위, 아사다 16위로 쇼트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며 금메달 행보가 어두워졌다.
4년 전 놓친 금메달을 간절히 원하는 아사다의 와신상담도 김연아의 벽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특유의 풍부한 표현력에 노련함까지 더해진 김연아의 완벽한 연기 앞에, 도전자들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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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러시아)=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