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아디오스 김연아’...여왕 떠나보내는 우리들의 자세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4.02.21 06: 59

'피겨여왕' 김연아(24)의 마지막 무대가 끝났다. 역사에 남을 올림픽 2연패는 좌절됐지만, 그것이 비록 누군가의 장난질 때문이라해도 김연아는 마지막까지 당당하고 또 담담했다.
김연아는 21일(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서 기술점수(TES) 69.69점 예술점수(PCS) 74.50점을 받아 합계 144.29점을 기록, 전날 쇼트프로그램 점수 74.92점을 더한 219.11점을 받아 올림픽 2연패 달성이 좌절됐다. 1위는 224.59점을 기록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 러시아)였다.
러시아의 홈 텃세는 상상 이상으로 거셌다. 경기 결과에 대한 외신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미국 시카고 트리뷴은 "러시아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피겨 금메달을 따냈다. 이것은 급격하게 변해온 피겨 역사상 가장 의문스러운 판정 덕분이었다"고 비꼬았고, 독일 공영방송 ARD 역시 "김연아가 전설적인 피겨선수 소냐 헤니, 카타리나 비트의 걸어온 길을 따라 올림픽 연기를 마쳤다. 올림픽 승리가 확실시됐으나 이해할 수 없게도 219.11점만 받았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정작 김연아 본인은 담담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실수없이 마쳤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잘 끝난 것 같다. 노력한 만큼 잘 보여드린 것 같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인 김연아는 점수가 너무 박했던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도 "실수는 없었지만 연습만큼 완벽하지 않았다. 2등했는데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계속 이야기했듯 금메달은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출전에 의미가 있었고, 할 수 있는 것은 다했기 때문에 만족스럽다"며 자신의 마지막 무대를 실수 없이 마쳤다는데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올림픽은 김연아에게 있어 의미가 각별했다. 26년 만의 올림픽 2연패라는 역사에 도전하는 무대이자, 자신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피날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2년 가까운 공백을 깨고 현역 생활 연장을 선언하기까지 김연아가 얼마나 고뇌했을지는 그 자신만이 알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순간에 또 한 번의 도전을 선택했다.
김연아는 호평을 받았던 지난 시즌 쇼트프로그램 ‘뱀파이어와의 키스’, 프리스케이팅 ‘레 미제라블’ 대신 올림픽 시즌을 맞아 새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쇼트프로그램 ‘어릿 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 프리스케이팅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까지 김연아가 시도했던 프로그램들과 달리 서정적인 쇼트프로그램과 탱고 리듬에 변화무쌍한 곡 전개가 특징인 프리스케이팅의 하모니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김연아가 이 곡들을 올림픽 시즌 프로그램으로 선정했을 때 아쉬움 혹은 의문을 표하는 시선도 많았다. 강렬한 인상을 남겨줘야하는 올림픽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었다. 복잡한 스텝과 잠시도 쉬지 않는 힘든 구성의 ‘아디오스 노니노’는 특히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김연아의 안무가 데이빗 윌슨은 이번 시즌 프로그램을 두고 ‘김연아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곡’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 말대로다. ‘아디오스 노니노’는 ‘탱고의 전설’로 불리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곡으로, 독창적인 아르헨티나 탱고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반도네온의 멜로디를 타고 흐르는 피아졸라의 탱고는 클래식과 재즈가 어우러진 독특한 매력으로 전세계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기존 탱고의 틀을 벗어나는 듯하면서도 귀를 잡아끄는 매력으로 ‘누에보 탱고’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피아졸라의 탱고는 완벽한 점프와 풍부한 표현력으로 신채점제 이후 200점대를 돌파하며 피겨스케이팅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김연아와 무척 어울리는 곡이다.
이 두 프로그램은 마지막을 맞이하는 김연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프로그램이기에 의미가 깊다. ‘어릿광대를 보내주오’는 이제 더이상 무대에 설 수 없는 여배우가 자신을 대신하기 위한 어릿광대를 보내달라 이야기하는 노래다. 이별의 메시지를 담아, 내가 떠난 후에도 피겨스케이팅을 지켜보고 사랑해달라는 김연아의 자기고백처럼 느껴진다.
‘아디오스 노니노’ 역시 이별에 관한 메시지를 가슴 저리게 전하고 있다. 피아졸라가 장애인이었던 자신에게 탱고에 대한 열정을 전해준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바치는 곡인 ‘아디오스 노니노’는, 탱고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안타깝고 애절하지만 보내야하는 이를 향한 이별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스페인어로 작별을 고하는 인사인 아디오스에, 피아졸라의 아들이 할아버지, 즉 피아졸라의 아버지를 부르던 애칭인 '노니노'를 붙여 만든 이 곡에는 보내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만 하는 아버지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 담겨있다. 작별의 노래이자 그리움의 노래인 ‘아디오스 노니노’는 마지막 무대에서 안녕을 고해야하는 여왕의 선곡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한 선택이다. 여왕답게, 두 번의 클린으로 올림픽의 마지막을 장식한 김연아의 연기가 더욱 감동적이었던 이유기도 하다.
당당하고 담담한 태도로,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장식하고 매듭지은 김연아. 오히려 지켜보는 이들이 더 아쉬움이 남았을 마지막이지만 김연아는 밝은 미소로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그를 보내줘야만 하는 순간이 왔다. ‘아디오스 김연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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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러시아)=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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