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충성한 대가가 감독사퇴? 프로농구 현주소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4.02.22 17: 04

2014 소치동계올림픽의 열기가 막바지다.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낸 쇼트트랙 대표팀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개인보다 팀을, 소속팀보다 국가대표를 먼저 내세운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농구판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안양 KGC인삼공사는 22일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이상범 감독이 21일 LG전에서 74-80으로 역전패한 뒤 플레이오프 최종탈락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KGC는 잔여 경기를 이동남 코치 감독대행 체재로 마무리할 계획이다.
KGC구단관계자는 “플레이오프 탈락이 최종 확정돼서 (이상범 감독이) 이런 부분은 본인이 최종적으로 책임을 져야한다고 이야기를 하더라”며 이 감독의 사퇴의사를 전했다. 구단 고위층은 시즌 내내 이상범 감독에게 성적에 대한 압박을 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사퇴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의 해임이나 다름없다. 구단은 이 감독의 사퇴의사를 적극적으로 반려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기간이 1년 남아있는 이상범 감독의 사퇴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이 감독은 2012년 KGC의 창단 첫 우승을 일궈내며 명장으로 부상했다. 지난 시즌에도 부상병동인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8위에 그치는 올 시즌 성적부진도 주축선수들의 부상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한 시즌 성적만으로 검증된 감독을 내친 것은 성급한 결정이 아니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상범 감독은 지난해 여름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 남자농구팀의 코치를 자처했다. 프로농구 감독이 소속팀을 떠나 대표팀에 신경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16년 만의 농구월드컵 진출을 위해 농구인들이 다같이 뜻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이상범 감독은 지난해 7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외국선수 트라이아웃에 불참했다.
챔피언 모비스를 이끄는 유재학 감독은 부담이 덜했다. 외국선수 리카르도 라틀리프, 로드 벤슨과 모두 재계약을 맺었기 때문. 두 선수는 올 시즌에도 맹활약을 펼치며 모비스를 선두로 이끌고 있다. 하지만 KGC는 사정이 달랐다. 리바운드 1위 숀 에반스는 시즌초반 적응에 애를 먹었다. 야심차게 뽑은 브라이언 매튜-어매닝은 무릎부상을 당하는 악재를 맞았다. 이에 검증된 후안 파틸로를 영입하려 했으나 뒷돈을 요구했다. 대체로 데려온 마퀸 챈들러는 실력이 형편없었다. 모든 책임은 이상범 감독의 몫이었다.
김태술-양희종-오세근 ‘빅3’도 시즌내내 부상에 신음했다. 이상범 감독은 완전한 회복을 위해 지난 시즌 오세근을 통째로 쉬게 했다. 올 시즌 초반에도 패배의 위험을 무릎 쓰고 오세근의 출전시간을 조절해줬다. 부친의 병환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김태술도 품었고, 양희종의 부상도 배려했다. 이상범 감독이 성적욕심을 부렸다면, 세 선수를 혹사시킬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감독 목숨을 걸고 선수를 보호했다. 결국 이는 자신이 사퇴로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으로 돌아왔다.
우리나라 농구대표팀에는 전임감독과 코치가 없다. 보통 프로농구 감독들이 임시적으로 지휘봉을 잡는다. 그러나 이상범 감독의 사례가 나온 마당에 앞으로 누가 대표팀을 맡으려 하겠는가. 국가를 먼저 생각해서 돌아온 것은 개인의 희생뿐이었다. 현재 대표팀은 유재학 감독이 다시 지휘봉을 잡았을 뿐 코치가 공석인 상태다. 스페인 농구월드컵과 인천 아시안게임서 호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인 상황.
양희종, 박찬희, 이정현, 오세근 등 현재 KGC의 핵심전력은 대부분 이상범 감독이 신인시절부터 직접 뽑은 선수들이다. 선수들은 이상범 감독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그 믿음은 2012년 창단 첫 우승으로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이제 이상범 감독은 떠났다. 올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신분을 얻는 김태술과 양희종이 꼭 재계약한다는 보장은 없다. 
KGC는 이상범 감독에게 잔여계약 1년의 연봉 3억 500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또 다른 감독을 물색해 그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 하지만 현재 KGC의 문제는 감독 한 명이 바뀐다고 쉽게 해결될 성격이 아니다. 자칫 다음 시즌 KGC는 돈은 돈대로 쓰고, 성적도 나지 않고, 핵심 선수들은 잃고, 구단 이미지까지 나빠지는 4중고에 시달릴 수 있다.  
jasonseo34@osen.co.kr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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