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은 도전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스포츠의 오랜 진리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2연패에 성공한 한국 선수는 바로 ‘빙속여제’ 이상화(15, 서울시청) 한 명이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이상화는 예니 볼프(35, 독일)의 오랜 아성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여제로 등극했다. 지난해 이상화는 무려 4차례나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며 7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언론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상화의 2연패를 예상했다. 라이벌들 역시 이상화를 가장 큰 경계대상으로 꼽았다. 이런 환경은 이상화에게 자칫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실력 앞에 모든 것이 기우였다. 유일한 약점이었던 스타트까지 좋아진 이상화는 2차시기 37초28과 합계 74초70에서 모두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이상화가 최선을 다했을 때 그녀를 당할 선수는 아무도 없었던 셈. 올림픽 개막 후 한국선수단의 노메달 행진은 6일째 이어졌다. 이 때 터진 이상화의 2연패는 한국선수단 전체의 사기를 올려줬다. 이후 이상화는 한국의 주요 종목을 경기장에서 지켜보며 응원단장 역할까지 도맡았다.

반면 챔피언 모태범(25, 대한항공)과 이승훈의 2연패 좌절은 지키는 것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줬다. 남자 500m에 출전한 모태범은 69초69의 기록으로 아쉽게 4위를 기록, 메달사냥에 실패했다. 공교롭게 금은동 모두 네덜란드 선수들이 차지했다. 모태범의 기록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4년간 절치부심한 네덜란드 선수들의 기록이 워낙 뛰어났다.

4년 전 남자 10000m에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이승훈(26, 대한항공)도 고개를 숙였다. 5000m에서 6분25초61로 12위에 그쳤던 이승훈은 주종목 10000m에서 13분11초68로 아쉽게 4위로 메달획득에 실패했다. 4년 전 갑자기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꿨던 이승훈은 라이벌들의 견제를 전혀 받지 않았었다. 하지만 금메달리스트로 출전했던 소치 올림픽은 훨씬 어려웠다.
대신 이승훈은 주형준(23), 김철민(22, 이상 한국체대)과 호흡을 맞춘 남자 단체 추발에서 3분40초85의 기록으로 기대치 않았던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소치 올림픽에서 한국남자선수가 따낸 유일한 메달이었다. 자신의 주종목에서 성적이 나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컨디션을 끌어올린 결과였다. 이승훈 등의 노력으로 한국빙상은 의외의 종목에서 큰 가능성을 발견하는 값진 성과를 거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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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모태범 / 소치(러시아)=박준형 기자 souls1011@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