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축구하지 않을래? 네가 필요하다.”
잦은 부상으로 잔뜩 움츠리고 있던 이종민(31, 광주)의 마음을 움직인 단 한 마디였다. 망설일 것도 없었다. 처음 축구를 시작할 때 마음가짐, ‘초심’이 떠올랐고, 어느새 가슴도 뜨거워졌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두근거림인가. 이종민은 그렇게 광주 남기일 감독대행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난달 광주에 합류한 이종민은 24일 전지훈련지인 일본 시즈오카에서 “그저 가슴이 시키는대로 움직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왜 하필 광주였나. 클래식의 다른 시도민 구단도 있는데 굳이 내려온 이유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이미 숱하게 받아본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종민은 2003년 수원 삼성을 통해 프로에 데뷔했다. 이후 울산 현대(2005~2007)와 FC서울(2008~2010, 2012)을 거쳤고, 2013년부터 다시 수원 유니폼을 입었다. 모두 K리그에서 내로라 하는 호화군단이다. 오른 풀백으로 빠른 발과 날카로운 오버래핑을 자랑하던 이종민은 태극마크도 달아봤다. 누가 봐도 축구선수로는 성공한 인생이다.
하지만 잦은 부상이 그를 옭아맸다. 중요한 경기에서 늘 다쳤다. 힘들게 재활을 마치면 또 한 두달 만에 탈이 났다. 특히 허벅지 근육이 끊어져 1년 반을 쉴 때는 조바심 때문에 무리하게 재활했더니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종민은 “돌파구를 찾아 군에 입대했지만 복귀했을 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구단과 팬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믿었던 사람들의 시선이 싸늘해지고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 이종민은 잔뜩 위축됐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도, 누구 앞에 나서는 일도 일절 하지 않았다. 그 사이 나이는 한 살, 두 살 먹어갔다.
그때 남기일 광주 감독대행이 손을 내밀었다. “감독님은 상대팀으로 만났을 뿐 따로 인연도 없어서 깜짝 놀랐다. 감독님은 현역시절 늘 후반 20분쯤 교체돼 들어와선 신기하게도 그 때마다 골을 넣으셨다”고 웃은 이종민은 “뭔가 알 수 없는 진심과 따스함이 느껴졌다. 주위의 그 누구보다 날 믿어주는 것 같아 고마웠고, 광주에 온 뒤로도 ‘오길 참 잘 했다’는 생각만 든다”고 했다.
호화팀에선 누리지 못한 색다른 경험도 요즘은 재미있다. 이전 팀에선 클럽하우스 생활이 보편적이었다. 결혼 후에는 출퇴근을 했다. 하지만 광주에선 클럽하우스가 없는 관계로 원룸건물에서 합숙을 하고 있다. 그는 “동료들과 살을 맞대고 북적북적 지내는 것이 참 재미있다. 끈끈한 동료애가 느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종민이 광주 구단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건 어찌보면 ‘동병상련’ 때문이다. 결코 주변여건은 남루하지만 오직 1부리그 승격을 위해 애쓰는 구단의 모습과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이 꼭 닮았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이종민은 올해 큰 욕심은 내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진짜 축구’를 해볼 참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 마음껏 그라운드를 누비는 그런 축구말이다.
그는 “여러차례 큰 수술을 받은 뒤 나도 모르게 부상 부위를 보호하려는 위축된 플레이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과감해지려고 한다”며 “지난 2~3년간 백업만 하느라 원하는 축구를 못했는데 올해는 그 소원을 풀고 광주도 나도 함께 비상하겠다”고 말했다.
sportsher@osen.co.kr
광주 F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