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권 기권 기권, 반쪽짜리 동계체전이다. 왜일까.
지난달 28일 제95회 동계체전 쇼트트랙 경기가 열린 성남 탄천종합운동장 빙상장에는 올림픽 영웅들을 보기 위해 수많은 팬들이 몰렸다. 상상 이상이었다. 관중석은 선수 가족들과 팬들로 가득 찼고, 링크 주변에도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열띤 응원전을 벌였다. 탄식과 환호가 교차했다.
축제의 장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치를 빛냈던 이상화, 모태범 등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에 이어 박승희, 조해리 등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들이 연이어 기권을 선언했다. 올림픽 스타의 얼굴을 보러온 팬들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불안한 기운은 이미 감지됐다. 지난달 24일 소치 올림픽 폐막 후 이틀 만인 26일 동계체전의 막이 올랐다. 박승희와 조해리는 25일 귀국 후 채 3일이 되지 않아 다시 빙판 위에 섰다. 휴식은커녕 몸 만들 새도 없이 다시 전쟁터에 나간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쇼트트랙 감독은 "선수들이 올림픽에 갔다 와서 회복 시간이 없었다. 적어도 열흘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데 오자마자 경기를 하는 건 말이 안된다"면서 "부상 회복할 시간도 없다. 절대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감독의 외침은 계속 됐다. "일년 내내 운동을 하는 이유가 있다. 매일같이 운동하는 선수들이 하지 않으면 자기 다리 같지 않다"며 "올림픽 이후 대회를 개최하려면 적어도 열흘 정도 텀을 두든지, 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들은 빼줘야 되지 않나"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 감독은 이같은 무리한 일정이 오는 3월 14일 캐나다 몬트리올서 열리는 2014 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때문만도 아니라고 했다. "원래는 동계체전이 올림픽과 비슷한 날짜였는데 연기됐다"는 이 감독은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을 위해서 앞당긴 것도 아닌 것 같다.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도 경기를 하고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당장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들은 세계선수권을 위해 9일 출국해야 한다. 그 전까지 몸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기간 동안 올림픽 환영행사 등도 빠짐없이 다녀야 한다. 빡빡한 일정이 아닐 수 없다.
이 감독도 "이렇게 되면 세계선수권서도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면서 "부상도 더 심해질 수도 있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의 정책이 아쉽다. 선수들도 경기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안되기 때문에 기권하는 것이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70% 이상의 선수들이 그렇다"라고 하소연했다.

소치의 쇼트트랙 영웅들은 전국체전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소치 2관왕' 박승희는 이날 여자 500m에서 정상을 차지했지만 3000m 계주와 1000m(3월 1일 예정)를 기권했다. 소치 3000m 계주서 금메달에 힘을 보탠 '맏언니' 조해리도 전날 1500m서 5위에 그친 뒤 이날 3000m를 포기했다. 금빛 질주를 기대하던 팬들은 허탈감에 발걸음을 돌렸다. 누굴 위한 대회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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