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몸이 완전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정재훈(34, 두산 베어스)은 4승 1패 14세이브 7홀드, 평균자책점 3.44로 선전했다. 팀 내 최다 세이브를 올린 정재훈은 올해 이용찬이 마무리로 복귀했지만 불펜의 핵심으로 활약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재훈은 불펜에 적합한 투수다. 과거의 성적이 말해준다. 불펜이 천직이라는 것은 선발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마무리 때는 10개 정도를 전력으로 던졌는데, 선발을 해보니 처음부터 100개까지 계속 전력으로 던지고 있더라. 30개를 던지니 던질 게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발은 처음부터 선발로 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재훈은 자신이 불펜 체질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팀 내 위치로 보면 이번 시즌 위치는 분명 필승조에 포함되지만, 정재훈은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1명에 의존하면 팀도 그렇고 선수도 그렇고 길게 가지 못한다. (홍)상삼이, (윤)명준이, (오)현택이 등 좋은 선수가 많기 때문에 함께 오래 가는 것이 나에게도 이득이 된다. 나 말고도 잘 하는 선수들이 많은 것이 좋다”며 정재훈은 젊은 투수들의 성장을 반겼다.

지난해에는 마무리 부재까지 겹쳐 두산 불펜이 정재훈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컸지만, 올해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다. 올해 마무리로 돌아오는 이용찬은 2년에 걸친 마무리 경험이 있는 만큼 다른 선수들보다 신뢰할 수 있는 뒷문지기다.
사실 2009년 이용찬이 마무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뒤에서 조언을 해준 선수가 바로 정재훈이다. 정재훈은 “내가 마무리를 계속 하다가 팀에서 바꿀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그때 내가 용찬이에게 마무리는 몸 관리하기에 좋다면서 추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정재훈이 이용찬에게 마무리를 추천한 이유는 이용찬의 피칭 스타일이 마무리에 어울린다고 봤기 때문이다. 정재훈은 “구단에서 길게 던질 수 있는 투수와 짧게 던지는 것이 좋은 투수를 잘 판단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보기에 용찬이는 짧게 던지는 것이 좋아 보인다”는 말로 선발과 불펜투수 모두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적인 육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정재훈이 보는 올해 두산 불펜은 매우 낙관적이다. 정재훈은 “우선 양적으로 좋아졌다. 명준이는 게임을 할 줄 안다. 경기가 안 풀리면 마운드 위에서 자기와 싸우는 선수들이 있는데, 명준이는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하는 편이다”라며 마운드 위에서 집중력이 돋보이는 윤명준을 먼저 칭찬했다.
지난해와 달리 좌완 불펜 요원이 확보됐다는 점 역시 달라진 점이다. “좌완도 (이)현승이나 (정)대현이가 좋다. 지난 시즌엔 왼손이 없어서 내가 왼손타자 상대로 많이 나갔는데, 올해는 내 자리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이 정재훈의 생각이다. 정대현의 경우 매년 캠프에서만 좋다는 지적도 있지만, 정재훈은 정대현의 페이스에 주목하고 있었다.
정재훈이 언급한 선수이 모두 기대만큼의 역할을 해냈을 때, 이들로만 불펜이 구성돼도 두산 불펜은 지난해에 비해 강하다. 이용찬이 마무리로 자리를 잡은 가운데 정재훈을 비롯해 홍상삼, 윤명준, 오현택, 이현승, 정대현 등이 1군에 버틴다면 두산은 유형별로 다양한 투수들을 불펜에 두게 된다. 여기에 변진수를 비롯한 젊은 투수들이 가세하면 금상첨화다. 두산이 지난해의 불펜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