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난투사](45) ‘술병 보관함’을 아십니까…‘술 권하는 야구장’의 보고서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4.03.04 08: 42

‘경기장 정문에 술병 보관함 등장.’
1986년 5월 4일치 기사의 제목이다. 잠깐 그 내용을 인용해본다.
“전남 도경(도 경찰청)은 프로야구 경기 때 자주 발생하고 있는 소란과 폭력사태를 근절하기 위해 (5월) 2일 하오 OB-해태전 때 광주 무등경기장 정문과 후문에 ‘술과 유리병은 이곳에 보관하여 주십시오’라는 대형 입간판을 내걸고 보관함까지 설치, 보관증을 주면서 술병 등을 보관 받아 경기가 끝났을 때 돌려주고 있다. 경찰은 또 남자들과 동행하는 여자 관객들이 손가방에 술병 등을 넣고 입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경까지 동원했는데 4천여 명의 관중들로부터 소주 1백여 병을 보관의뢰 받아 경기가 끝난 뒤 본인에게 모두 돌려주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때 그 광경이 절로 머리에 그려져 웃음이 번진다. 말이 좋아 ‘보관 의뢰’였지, 실제론 관중의 몸수색 후 ‘압수’한 것들이었다. 오죽했으면 술병 색출 작업에 경찰까지 나섰을까. 그만큼 당시 빈병 투척이 그라운드에서 빈발했다는 방증이다.
또 다른 기사를 한 번 보자. 1997년 4월 27일치 에 실린 내용이다.
“(4월) 25일 하오 8시 30분께 대구 북구 고성동 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삼성과 쌍방울의 6회 초 경기를 관람하던 관중 차 아무개(26. 회사원) 씨 등 수백여 명이 삼성 선수들의 잇단 수비실수에 흥분, 쓰레기통과 맥주깡통 등을 던져 경기가 중단되는 소동을 빚었다. 차 씨 등은 운동장에서 판매하는 캔 맥주 등을 마신 후 술김에 이 같은 소란을 피운 것으로 드러났다.”
술로 인한 그라운드 소동을 예시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1980~90년대에는 야구장에서 너무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일상사였다. 술이 몸에 들어가면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는 관중이 야구를 보면서 자연스레 열기를 발산시킨다고 해야 할까.
 
이상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전 사무총장(현 야구박물관자료수집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경찰청 지시로 구장에 주류 반입이 안 되니까 술병에 이름을 써 붙여서 구장 입구 한쪽에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돌려주는 식으로 서울시나 지방에서 그런 식으로 단속을 한 적이 있었다. 술을 못가지고 가게 하니까 벼라 별 아이디어가 다 동원됐다. 여자 핸드백에 술병을 넣거나 심지어 아기 우유병에 우유가 아닌 소주를 넣어 반입하는 사례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술을 맡기기 싫다고 출입구 앞에 서서 입안에 털어 넣고 구장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광주구장 같은 곳에선 술 판매자가 노끈을 가지고 들어가 밖에 기다리는 사람한테 줄을 늘어뜨려 술병을 매달아 넣어주면 구장 안에서 술을 파는 일도 많았다. 야구장 담장이 높은 곳은 불가능한 일로 광주나 전주, 인천(도원구장)은 가능했다. 전주구장 같은 데선 담치기 불법 관전도 꽤 있었다. 항상 단속한 것은 아니었다. 경찰청이 느닷없이 단속령을 내리면 잠깐 동안 집중 단속하는 식이었다. KBO는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계속 경찰청에 여러 차례 4도 이하 맥주는 구장 반입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맥주는 4도짜리였다.”
지나간 시대의 야구장 풍경이었다. 요즘에는 술 반입이 양성화 됐다. 팩소주를 들고 구장에 들어가는 관중이 많고 별다른 시비를 걸지도 않는다. 구장 안에서 종이컵에 따라 맥주를 팔기도 한다. 관전 문화가 그만큼 성숙해졌고, 달라진 것이다. 
일제시대 소설가 현진건(1900~1943년)의 소설 의 마지막 문장은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이다. 그 문장을 패러디하자면, ‘야구가 뭐 길래, 그 몹쓸 술을 권하는고!’로 해도 되겠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일간스포츠 1986년 5월 4일치 기사
1987년 어느 날 잠실구장에서 열렸던 해태-OB의 경기 도중 관중들이 응원단장의 몸짓에 맞춰 응원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제공=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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