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도도하고 그래서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김희애가 고개만 돌리면 있을 법한 '평범한 엄마'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영화 '완득이'를 연출했던 이한 감독과 손잡고 20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김희애는 끝없는 절망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하는 억척스런 엄마 현숙으로 분해 그 어느 때보다 먹먹한 감동을 안긴다. 현숙에게는 SBS 드라마 '마이더스'의 팜므파탈도, '눈꽃'의 지적인 매력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우리네 엄마고 아줌마다.
90년대 트로이카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가, 광고 속 눈부신 피부를 자랑하며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그가 이러한 역할을 선택하기까지에는 많은 고민이 있었을법 하지만 정작 본인은 좋은 작품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연기 신념을 밝혀왔다.

그리고 김희애라는 이름 석 자 앞에 붙은 '우아', '도도', '지적' 등등의 수식어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인지도 털어놓으며 '여배우'가 아닌 '배우'로서의 김희애를 말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김희애와의 일문일답.
- 20년 만에 돌아온 작품이라 여배우로서 빛이 나는 멋진 캐릭터를 하고 싶었을텐데.
▲내가 어떻게 비춰질지 이것보다도 내가 좋은 작품에 참여하는게 더 중요하다. 이번 작품은 흠 잡을 데 없었다. '완득이'라는 전작과 비교했을때 감독님의 마인드가 사람을 아프게 하지 못하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풀어나가나는 포인트 지점도 가장 밑바닥을 지나서 그걸 딛고 일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모녀의 따뜻한 이야기로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선택하게 됐다. 같이 출연하는 배우들도 정말 좋았다. 김유정 양은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보면서 꼭 만나고 싶었는데 10년 전에 유정이가 4살때 세제 광고를 같이 했더라(웃음). 얼굴만 예쁜게 아니라 연기도 잘해서 크게 될 것 같다. 극 중 악역인데 악역을 오히려 하고 싶었다고 하는걸 보니 똑똑한것 같다. 세계적인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향기는 놀라운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어른인 나도 자극을 받고 부끄러울 정도다. 고아성은 이미 '설국열차'라는 큰 작품을 했고 세계적인 배우들이랑도 했고 외모도 개성있고 흔한 성형미인이 아니고 몸매도 예쁘고. 그 아이는 이미 시작이 됐다.
- 오랜만의 영화 출연에 부담감은 없었나.
▲ 주위 분들이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이미 편안하게 하고 있는데 거기 가면 흥행도 신경써야하고 왜 그런 모험 하느냐 하셨는데 시나리오가 흠잡을 데 없더라. 배우가 피하는 것도 비겁하다는 생각도 들고 사람이 살다보면 망할때도 있고 운좋게 좋을 때가 있는 것 아닌가. 피한다고 피해지나. 그래서 했다. 작업환경도 잘 대해주셨고 좋아서 앞으로 불러주시면 계속 하려고 한다. 여행도 그렇고 뭐든지 도전을 하면 내 인생이 풍요로워지는데 겁이 나서 아는 길로만 가고 그런 경우가 있지 않나. 나한테는 너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도전을 할 생각인가.
▲ 도전하는게 어렵지 하고 나면 별것도 아니고 좋은 계기가 돼서 나를 바꿀수있는 계기가 되는데 쉽게 도전이 안 되는게 어려운 것 같다.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하고 실패했던 경험이 자신을 바꾸게 되는 것 같더라. 여행가는 것도 걱정하셨는데 내 얼굴을 보면서 반성할건 반성하고 이 계기를 통해 잘못된 점은 고치고 살아가자는 마음이 있었다. 내 흉은 내가 모르지 않나. 연기할때도 모니터를 왜 보냐면 모니터에는 연기의 잘못된 부분이 나오니까 보는 것이다. 이 나이에 한번쯤 예능을 찍어서 내 모습 보자고 생각했다. 이상하다? 그럼 고치고 살면 되지라는 용기를 가지고 했다. 운이 좋아서 잘 했지만 조심스런 부분도 많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도전이나 익사이팅 이런 것 보다도 현재 있는거 잘하고 고요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게 행복한걸 아는 나이가 되는 것 같다. 우연하게 기회돼서 무엇을 하게 된다면 최선을 다하지만 그걸 쫓아서 가는건 쉽지 않다.
- 촬영 전후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된 것이 있나.
▲ 아이들의 나이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초등학교 전에는 무조건적인 케어가 필요하다.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했지만 지금 그러면 애들 부담스러워하고 애들을 망친다(웃음). 아이들은 과거의 추억일 뿐인 것 같다. 현재의 나의 부분처럼 생각하면 아이도 불행해지고 나도 그렇다. 아이들은 내 거울이니까 내가 열심히 잘 살고 내가 낳은 애 또는 남의 집 애라는 생각으로 화를 삭히면서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 더 지금으로선 필요한 것 같다.
- 유아인과는 어땠나.
▲ 유아인은 남다른 것 같다. 연기를 해보니까 '우아한 거짓말' 때는 수수한 옆집 총각이어서 구수하게 하더니 '밀회'에서는 또 아티스트고 천재고 스무살 역할을 집중 해서 한다. 피아노 연습은 말할것도 없고 내가 머쓱할정도로 집중해서 한다. 그 어떤 배역보다 매력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우로서의 생각이 남다르고 표현도 그 나이 또래 배우 중에 저렇게 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 정도로 거침 없다. 대단하다.
- 센 코미디를 해보고 싶지는 않은가.
▲ 나는 좋다. 내가 평상시엔 많이 웃기다. 그래서 '코미디 한 번 해볼까' 이러면 사람들이 내 이미지가 있어서 대중이 배신감을 느낄지 모른다고 하더라. 그래서 조심해서 선택해야 한다고 하더라. '내가 남들을 속인건가, 내 연기에 충실했던 건데 가식이었나, 내가 코미디를 하면 배신인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어떠한 것이든 작품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있다면 상관없다. 고정적 이미지 벗는 것이 힘들다. 시간이 걸리더라. 팜므파탈 역할을 한 뒤 그런 역할만 들어와서 2년을 쉬었다. 시간이 걸린다.
- 포스트 김희애를 뽑는다면 누가 있을까.
▲ 내가 뭐라고(웃음). '우아한 거짓말'에 나오는 세 소녀들. 걔네들 연기는 세계적인 연기라고 생각한다. 외국애들에 안뒤진다(웃음). 성실하고 지구력만 있다면, 오래만 버티면 다 되는거 아닌가 생각한다.

- 딸을 갖고 싶은 마음은 없나.
▲ 딸이고 아들이고 효자 효녀를 낳아야 한다(웃음). 여자들이 확률적으로 섬세하고 자상한 면이 아들보다는 나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시각이 엄마 시각으로 보니까 잘 자란 딸 보면 부럽기만 하다. 특히 고아성, 김유정, 김향기 어머님들 보면 정말 부럽다. 어쩜 저렇게 잘 키웠을까 생각이 든다. 심성도 잘 키우고 애들이 돈도 잘벌지(웃음). 애들이 자기 적성 찾기 어려운데 재능 찾아서 자기 자리에 우뚝 섰다는게 쉽지 않은데 어머님들 보면 어떻게 키우셨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부럽다. 한편으로는 우리 아이들도 건강하게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 멋지게 나이들어가는 비법이 있다면?
▲ 그런건 없고 항상 광고를 찍을때도 '이번에 찍고 끝날지 몰라'하는 두려움이 있다. 항상 잘릴 생각을 하고 있다. 노력해서 최대한 나도 길게 가려고 한다. 선생님들 선배님들 보면 젊고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 보면 정말 좋다. 그리고 그게 미래의 내 모습이지 않나.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길게하고 영역을 넓혀서 다양한 소재를 하고 싶다. 오래해서 연령대를 높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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