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 위험한 소문’(이하 찌라시, 감독 김광식) 포스터를 보면 김강우, 정진영, 고창석, 박성웅 네 남자 배우들의 채우고 있어 무거운 분위기가 감돈다. 그러나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빛내는 여배우 이채은이 있다.
관객들에게는 낯선 얼굴이지만 미스김의 역할을 부족하거나 과하지 않게 연기하며 네 남자배우와 이질감이나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게 하게 한다. 이채은이 ‘찌라시’라는 영화에서 동떨어지지 않고 배우들과 빈틈없는 호흡을 보여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채은, 그가 바로 ‘독립영화계의 전도연’이었다. 포털사이트에서 이름을 검색하면 몇 페이지가 넘어갈 정도로 수많은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는 배우였다. 출연한 독립영화, 단편영화 수를 보면 어림잡아 40~50편이다.

이러한 필모그래피는 정식으로 상업영화에 데뷔했다고 할 수 있는 ‘찌라시’에서 그를 어설픈 신인으로 만들지 않았다. 기자를 꿈꿨지만 한 마디로 속아서 취업한 지하 사무실에서 찌라시를 만들게 된 미스김 역할을 맡은 이채은은 웬만한 일에는 눈도 끔쩍하지 않고 타자를 두드리고 백문(고창석 분)의 끊임없는 구애도 무시하고 도도하고 시크한 태도를 보이는 미스김을 맛깔나게 연기했다.
이채은은 미스김인냥 연기했고 관객들은 잘못 발을 디딘 직장에서 일하고 더러운 꼴도 보는 미스김에게 공감을 보내며 웃었다. 미스김이라는 이름을 보면 비중이 없어 보이지만 극 중 네 남자배우와 거의 항상 함께 한다.
“주변 사람들은 ‘찌라시’에서 미스김 배역이 주는 느낌이 많이 안 나올 거로 생각하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미스김이 기억난다고 해줬어요. 고창석 선배님과 러브라인이 있다고 했는데도 크게 기대 안 하더라고요. 정말 의외의 캐릭터인 것 같아요. 저한테는 복덩어리 캐릭터예요. 그래서 일반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해요. 어찌 됐든 관객들에게 정식으로 상업영화를 통해 저를 보여드린 게 처음이니까 낯선 여배우를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이채은이 배우로서 시작은 단편영화였다. 배우가 되고 싶어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했지만 배우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배우는 그저 저 먼 곳에 있는 존재였고 차근차근 올라가자는 생각에 단편영화부터 출연했다. 40~50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서울독립영화제, 미쟝센 단편영화제 등에서 연기상도 받았지만 장편영화에 출연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대학 졸업하고 배우활동을 할 만한 용기가 없었어요. 문을 두드릴 용기가 없었죠. 제가 소극적이어서 연기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찾다 보니까 독립영화로 시작하게 됐어요. 영화제에서 4차례 수상하다 보니 독립영화 배우의 인상이 점점 강해졌어요. 독립영화가 내 연기의 베이스가 돼준 건 확실하지만 좀 더 많은 분에게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회사원’ 섭외가 들어왔고 ‘남자가 사랑할 때’에도 출연했고 ‘찌라시’가 저한테는 빛을 조금 본 영화가 됐죠.”
‘찌라시’에서 비중 있는 미스김 역할을 맡게 된 건 김광식 감독과의 특별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 김광식 감독의 영화 ‘내 깡패같은 애인’ 출연을 계기로 ‘찌라시’ 미스김을 연기할 수 있게 됐다.
“‘내 깡패같은 애인’에 간호사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감독님이 그때 좋은 인상을 받으셨다면서 같이 하자고 했어요. 최근 감독님과 3~4년 연락을 못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저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안부 문자를 보냈어요. 감독님이 만나자고 했고 미스김 역할을 주셨죠. 정말 신기했어요. 어떤 작품은 계속 거절해도 결국 돌아오는 게 있잖아요. 자기 역할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필연적으로 만난 ‘찌라시’에서 이채은은 고창석과 러브라인을 형성하며 무거운 분위기에 재미를 불어넣었다. 어울리지 않은 듯 어울리는 이채은과 고창석의 투샷은 확실히 ‘찌라시’의 또 다른 포인트였다. 이에 이채은은 고창석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고창석 선배님이 짝사랑해주지 않았으면 미스김이 매력이 없었을 텐데 제가 나오지 않은 장면에서도 ‘미스김’, ‘미스김’ 해주니까 그 러브라인이 감사하고 좋았어요. 고창석 선배님을 촬영 전에 봤는데 아무래도 선배님이기 때문에 만나기 전에 걱정했어요. 그런데 정말 포근하고 편안한 선배님이었어요. 감독님이 저희 두 사람을 보고 잘 어울린다며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이채은은 러브라인이었던 고창석 외에 가장 많이 마주했던 정진영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정말 어려운 대선배지만 누구보다 그를 옆에서 가장 많이 챙겨주고 응원해줬다.
“정진영 선배님이 가장 힘이 돼주셨어요. 제가 새카만 후배인데 마음을 열고 대해주셨어요. 촬영 끝나고 정말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왔던 게 제가 막내라 에너지를 불어넣는 역할을 해야 했는데 제가 무뚝뚝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고민하다가 결국 못했어요. 제가 살갑게 해야 했는데 ‘잘해드릴 걸’이라는 후회가 되더라고요.”
오랜 연기생활을 하면서 상업영화 ‘찌라시’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이채은. 그가 앞으로 꾸는 배우의 꿈, 목표는 거대하지 않지만 쉽지는 않다. 관객들에게 자신의 연기를 꾸준히 보여주는 것, 오래 연기를 하는 것이다.
“긴 목표는 오래오래 연기하는 거예요. 배우 이채은이라는 사람을 대중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제 상업영화 ‘찌라시’에서 비중이 있는 역할을 맡아 연기했지만 제 인상이 남아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짧은 목표는 여러 작품을 통해 대중이 이채은이라는 배우에 접근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데뷔가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단역도 많이 하고 단편도 많이 찍었는데 ‘찌라시’가 시작의 의미가 있는 영화예요. 이제 겨우 한 발 들어섰다는 느낌이에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에는 유리막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쉽게 깨지는 못하는 느낌. 이제 유리를 막 조금 깨고 나온 기분이에요.”
kangsj@osen.co.kr
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