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님, 행님, 웨어 이스 마이 백(Where is my bag)?"
롯데와 두산의 시범경기를 앞둔 12일 김해 상동구장은 경기 전부터 잔뜩 하늘을 뒤덮은 구름 때문에 쌀쌀한 날씨였다. 선수 더그아웃 뒤편에는 대형 온풍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롯데 새 외국인타자 루이스 히메네스는 난로 바로 앞에 기대서서 따뜻한 바람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베네수엘라 출신인 히메네스의 모국어는 스페인어. 마침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 호르헤 칸투(두산)가 롯데 더그아웃을 찾아왔다. 그러자 두 선수는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듯 스페인어로 한참을 떠들었는데, 특히 히메네스는 그 큰 덩치에 끊임없이 몸짓을 해가며 수다를 떨었다. 둘의 대화가 이어진 약 3분 가운데 히메네스가 침묵한 건 그의 수다에 놀란 칸투가 잠시 그를 제지했을 때였다.

잠시 두산 훈련모습을 지켜보던 히메네스 옆으로 엄정대 1군 매니저가 다가왔다. 히메네스는 엄 매니저를 보자마자 "행님, 행님, 웨어 이스 마이 백(Where is my bag)?"이라고 말했다. 한 번만 말한 게 아니라 이 말을 약 5회 정도 빠른 속도로 반복했다.
한참 자기 가방을 찾던 히메네스는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 자신의 새 스파이크를 가리키며 엄 매니저에게 예쁘냐고 자랑을 시작했다. 그러자 엄 매니저는 "이 신발 안돼. 우리 신발 아니잖아. 너 페널티 받아 페널티"라고 짐짓 화난 듯 이야기했다.
올해 롯데의 공식 스폰서는 하드 스포츠다. 구단은 가급적이면 선수들이 공식 스폰서 제품을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마침 히메네스가 신고 있던 새 스파이크는 일본에서 직접 주문한 것. 새 신을 신고 아이처럼 해맑게 웃던 히메네스는 '페널티' 한 마디에 울상이 됐다.
그리고서는 히메네스의 수다가 다시 터졌다. 엄 매니저에게 "아이 엠 쏘리(I'm sorry)"라고 외치더니 이윽고 일본어로 "조또마떼(기다려달라)", 우리 말로 "행님, 행님, 미안해요"라고 떠들었다. 엄 매니저가 계속해서 고개를 흔들자 이번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를 쏟아냈다. 정신없는 수다에 엄 매니저도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엄 매니저는 손에 롯데에서 나온 와플과자를 들고왔다. 평소 히메네스가 좋아하는 과자라는 후문이다. 히메네스는 "맛있겠다, 오이시(일본어로 맛있다)"라고 외쳤지만 곧 지금은 먹을 수 없으니 자신이 데려온 개인 트레이너인 앤드리에게 가져다 주라고 말했다.
이처럼 히메네스는 더그아웃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이야기한다. 뛰어난 친화력을 앞세운 히메네스는 벌써부터 못 먹는 음식이 없다. 한 구단 관계자는 "누가 노홍철을 롯데에 데려왔냐"면서 히메네스를 보고 고개를 내저었다.
더그아웃에서는 누구보다 밝고 쾌활하지만, 그라운드에서 히메네스는 더없이 진지하다. 훈련이 끝나면 선수들과 함께 공도 줍고, 번트연습을 하는 선수들을 돕기 위해 배팅머신 앞에 서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롯데 구단 관계자는 "정말 야구를 사랑하는 선수다. 팬들이 사인요청을 하면 만사 제쳐놓고 응해주는데, 그것이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훈련 역시 누구보다 진지하게 한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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