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가 16일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 낸 선발 라인업은 호르헤 칸투가 빠진 것을 제외하고는 이번 시즌 주전 라인업이라 할 수 있었다.
이날 두산은 민병헌과 오재원이 테이블 세터를 구성했고, 김현수, 칸투 대신 들어온 오재일, 홍성흔이 클린업에 자리했다. 그 뒤를 양의지가 받쳤고, 이원석-김재호-정수빈이 하위타선에 버텼다.
김진욱 감독이 이끌던 지난해 김재호가 9번에 들어선 것과 달리 올해 송일수 감독은 그보다 빠른 선수를 9번에 넣으려는 계획이다. 그 결과 정수빈, 장민석 등 빠른 스피드를 갖춘 외야수들이 9번 타순에 들어갈 후보로 경쟁 중이다.

다른 발 빠른 선수들을 제치고 민병헌이 1번이 된 것은 송 감독이 스프링캠프부터 구상한 부분이다. 하위타선에서 찬스가 만들어질 경우 1번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 오재원, 정수빈 등에 비해 장타력까지 겸비한 민병헌이 1번을 맡아 활약하면 1번 타순에서 더 많은 타점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15일 라인업은 주전 멤버 중 일부가 빠진 상황을 가정한 라인업이라 볼 수 있었다. 오재원과 양의지, 김재호가 선발에서 제외됐고, 그 자리에 최주환, 김재환, 허경민이 들어갔다. 타순도 정수빈이 1번에 배치되고 민병헌은 2번으로 출장했다. 양의지가 빠짐에 따라 6번 타순도 이원석이 꿰찼다.
그러나 빠른 선수를 9번으로 기용하겠다는 틀은 변함이 없었다. 이날 9번은 허경민이었다. 발이 빠르지만 1번이 낯선 허경민에게는 9번이 적격이었다. 함께 하위타순에 있던 최주환과 김재환의 경우 발로 상대 내야를 흔드는 유형은 아니지만 장타 한 방을 갖췄다는 점에서 9번보다는 7, 8번이 어울렸다.
장타력이 있는 선수보다 발이 빠른 선수를 9번으로 돌려 상위타선으로 찬스를 이어주는 방식은 큰 성공을 거뒀다. 두산은 15일 경기에서 허경민이 3번 출루하며 활발하게 찬스를 만들어 줬고, 1번과 2번 타순에서 각각 2타점(2번은 교체로 나온 양의지가 2타점)씩을 만들어냈다.
대부분이 주전이었던 16일 경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1번 민병헌이 희생플라이로 1타점을 올렸고, 2번 타순에서도 오재원에 이어 교체로 나선 최주환이 박성호를 상대로 3루타를 때려내며 2타점을 쓸어담았다. 두산의 1, 2번 타순은 KIA와의 2연전에서 7타점을 챙겼다.
현대 야구에서 1번은 찬스를 만드는 능력 못지않게 해결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자니 데이먼이 2000년대 메이저리그 최고의 리드오프 히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출루 능력, 빠른 발과 동시에 장타력과 찬스에서 해결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두산 타선은 FA 3명이 빠져나가며 멤버가 달라진 것 외에도 타순 구성 방식까지 변했다. 이종욱이 떠나면서 1번부터 연쇄적인 변화가 불가피했던 것은 맞지만, 9번타자를 선택하는 기준에 변화를 주면서 타순 전체의 유기적인 흐름이 강화된 모습이 지난 2경기에서 나타났다.
정규시즌에서도 두산이 이와 같은 공격력을 보여주려면 9번과 1, 2번의 역할이 중요하다. 민병헌에게는 본연의 역할인 출루와 도루 외에도 득점권 찬스에서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해졌다. 그리고 그 찬스를 만들 9번 역시 이번 시즌 두산 타선의 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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