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려야죠. 그걸 기억하고 있으면 안 돼요”
최정(27, SK)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이라는 뉘앙스가 목소리와 얼굴에서 묻어났다.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서도 놀랄 만큼의 평정심이었다. 최정은 그렇게 어깨 부상의 악몽을 지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건재를 과시했다. 올 시즌 또 한 번의 최고 시즌을 기대하게 만드는 모습이다.
최정은 18일과 19일에 걸쳐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와의 시범경기에서 7타수 3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선발 복귀전이었던 18일 경기에서 3타수 1안타를 기록하며 감을 조율하더니 19일에는 4타수 2안타를 기록하며 살아나는 타격감을 알렸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내용에도 의미가 컸다. 가볍게 휘두른 타구가 멀리 뻗었다. 최정의 컨디션이 가장 좋을 때의 모습이다. 그리고 수비에서 아무런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

사실 최정은 최근 아찔한 상황을 겪었다. 지난 8일 대전 한화전에서 5회 수비 도중 정현석이 친 강습 타구에 오른 어깨를 맞았다.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고 결국 경기에서 빠져야 했다. 진단 결과 타박상으로 판정돼 구단 전체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그 후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는데 18일부터 선발 3루수로 다시 복귀했다.
자칫 잘못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장면이었다. 선수 스스로가 느끼는 압박감은 다른 사람들이 짐작하는 이상이다. 수비 도중 두려움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정은 복귀 전부터 “잊어버렸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그 말을 그라운드에서 증명하고 있다. 18일과 19일 경기에서 최정 특유의 깔끔하고 과감한 수비력을 보여주며 SK의 핫코너를 든든하게 지켰다. 최정도 19일 경기에 앞서 “타격보다는 수비가 잘 된 것이 가장 기분 좋다”고 미소지었다.
지난해는 수비가 말을 안 들었다. 최정답지 않은 수비가 몇 차례 나왔다.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당시 훈련 도중 타구에 눈 부위를 맞은 것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 기억은 한동안 머릿속에 남아 최정을 움츠려들게 했다. 올해도 정규시즌 전 어깨에 타구를 맞으며 우려를 샀는데 최정은 그 후유증을 잘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국내 최고의 타격을 가진 3루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최정이지만 오히려 수비에 대한 집착이 더 크다. 방망이가 안 맞을 때보다 수비가 안 될 때 스트레스가 더 크다. 그런 최정은 지난해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 부임한 세이케 수비코치와 겨우 내내 땀을 흘렸다. 최정은 전지훈련 당시부터 수비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다른 외부적 상황이나 평가에 한눈을 팔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이처럼 강한 정신무장으로 뭉쳐 있는 최정은 다시 완전체로 진화하고 있다. 오키나와에서 가진 11차례의 연습경기에서 타율 3할6푼7리와 팀 내 최다인 8타점을 기록한 최정은 시범경기에서도 10타수에서 타율 3할과 3타점을 수확하며 정상 컨디션을 과시하고 있다. 오키나와 연습경기와 시범경기를 합쳐 15경기에서 무실책 행진인 점도 눈에 띈다. 지금 현재 분위기만 놓고 보면, 두 번 악몽은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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