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 개막전 선발투수는 김선우다.”
그야말로 폭탄 발언이었다. LG 김기태 감독은 24일 이화여대서 열린 미디어데이서 개막 두산전 선발투수로 김선우를 예고했다. 당초 코리 리오단 우규민 류제국 등이 개막전 선발 후보로 올라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김선우의 최근 2년 부진을 돌아보면 의외일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보통 감독은 스프링캠프를 전후해 시즌을 구상한다. 김기태 감독 역시 스프링캠프에 임하기에 앞서 레다메스 리즈를 개막전 선발투수로, 류제국을 홈 개막전 선발투수로 낙점했었다. 그런데 리즈가 무릎 부상을 당한 채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면서 LG와 리즈의 계약은 파기됐다. 김 감독은 시범경기 막판까지도 고민을 거듭했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실 일련의 과정을 놓고 보면 리오단이나 우규민이 개막전에 나설 것 같았다.
리오단을 내세우면 리오단의 자존심을 살린 채 시즌을 맞이한다. 하지만 리오단은 시범경기서 기복을 보였다. 특히 지난 22일 잠실 KIA전에서 잠실 만원관중의 함성에 당황한 듯 3이닝 동안 볼넷 5개를 범했다. 두산은 스프링캠프 종료 시점부터 더스틴 니퍼트를 개막전 선발투수로 예고했다. LG는 외국인 투수로 맞불을 놓을 수 있었으나, 리오단이 좀 더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올해로 풀타임 선발투수 2년차를 맞이하는 우규민은 시범경기서 가장 잘 던졌다. 9이닝 동안 볼넷은 하나 밖에 없었고 평균자책점은 1.00을 찍었다. 이대로 시즌을 맞이한다면, 2년 연속 10승 이상을 올릴 확률이 높다. 우규민은 지난해 두산과 플레이오프 4차전에 선발 등판, 6⅓이닝 1자책점으로 자기 몫을 다했다. 당시 우규민과 호흡을 맞춘 포수 윤요섭은 “그야말로 완벽한 투구였다. 미트 그대로 던졌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류제국을 처음 구상과 달리 홈 개막전이 아닌 개막전에 당겨쓰는 것도 생각할 만 했다. 하지만 류제국은 시범경기서 평균자책점 7.36으로 부진했다. 패스트볼 위주로 상대 타자를 상대, 시험 등판의 성격이 짙었으나 류제국은 낮 경기보다는 밤 경기를 선호한다. 과거 메이저리그 무대서도 낮 경기에선 패만 쌓았고 평균자책점이 9.00에 달했다. 지난해 한국에 와서는 단 한 차례도 오후 2시 경기에 나오지 않았다. 개막전은 오후 2시에 열린다. 이래저래 류제국과 개막전은 맞지 않았다.
결국 김 감독이 왜 우규민이 아닌 김선우를 택했는지를 알려면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물론 시범경기서 김선우의 모습은 기대이상이었다. 시범경기 첫 번째 등판부터 최고구속 142km를 찍었고 볼넷도 하나 밖에 나오지 않았다. 지난 18일 상동 롯데전에서 2점 홈런을 맞았으나 상동구장은 한국의 쿠어스필드라 불릴 만큼, 홈런이 쉽게 나온다. 강상수 투수코치 또한 “선우가 스프링캠프부터 생각보다 빠르게 페이스를 올렸다.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 그래도 김선우가 경쟁하는 곳은 개막전 선발 등판 자리가 아닌, 네 번째나 다섯 번째 선발투수 자리였다.
김선우는 두산 소속이었던 2011시즌 16승 7패 평균자책점 3.13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당시 이번에 선발투수 대결을 펼치는 니퍼트와 막강 원투펀치를 형성했었다. 하지만 2012시즌과 2013시즌 2년 동안 평균자책점 4.79 피안타율 3할2리, 득점권 피안타율 3할4푼8리로 고전했다. 2013시즌이 끝나고 두산이 김선우를 방출한 게 서두른 판단이라는 인상이 짙었다. 그래도 37세의 투수가 하락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김기태 감독은 시범경기 기간 내내 개막전 선발투수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메이저리그나 일본야구처럼 일찍 발표하는 게 맞다. 사실 리즈가 여기에 있었다면 리즈라고 시원하게 발표했을 것이다”며 “조금 늦지만 미디어데이 때 밝히겠다. 그러면 상대가 한 번이라도 덜 전력분석하지 않겠나”고 답했다. 김선우는 2008시즌부터 두산에서만 6년을 뛰었다. LG보다 두산이 김선우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LG는 29, 30일 개막 2연전과 4월 1일부터 3일까지 주중 3연전을 치르면 4일 동안 경기가 없다. 즉, 김선우 뒤에 쓸 카드들을 잔득 대기시켜놓았을 수도 있다. 주중 3연전에 나설 선발투수를 개막전 엔트리에 넣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풍부한 불펜진을 폭넓게 가동할 수 있다. 통산 두산전 평균자책점 3.15인 좌투수 신재웅이 김선우 뒤에서 제2의 선발투수로 대기할지도 모른다.
두산은 통산 개막전 성적 19승 11패(승률 63.3%)로 개막전 승률 75%인 SK에 이은 2위에 자리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우려를 뒤집고 김선우와 LG가 승리한다면, LG는 두산에 엄청난 심리적 우위를 점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셈이다. 어쨌든 김선우를 선택한 것에 대한 성패는 4일 후에 드러난다.
한편 지금까지 김선우의 개막전 선발 등판은 단 한 차례 있었다. 2009시즌 KIA를 상대로 개막전에 나서 6이닝 2실점으로 승리를 따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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