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클리닝타임] ‘불면의 밤’ 이만수의 고민과 책임감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4.03.25 06: 44

침대에 누워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많은 것이 뒤범벅되어 숙면을 방해하고 있었다. 애써 잠을 청해도 이내 눈이 떠지곤 했다. 새벽 4시. 이만수 SK 감독은 멍하니 책상에 앉아 고민에 잠겨 있었다. 책상 위에는 선수들의 이름과 그간의 성과가 적힌 자료들이 이 감독의 시선을 붙잡아뒀다.
이만수 감독은 “요즘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있다”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불면의 원인은 딱 한 가지다. 시즌을 앞두고 26명의 개막 엔트리를 짜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도 이맘때쯤 엔트리를 두고 고민이 있었던 이 감독이다. 하지만 올해는 그 고민의 성격이 달라졌다. 지난해는 부상자들이 많아 “어떤 선수를 불러 올려야 할까”라는 것이 화두였다.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올해는 “어떤 선수를 내려보내야 할까”라는 잔인한 고민이다.
쓸 수 있는 선수가 많다는 것은 감독에게 축복이다. 이 감독도 “지난해보다는 훨씬 사정이 낫다. 부상자도 없고 팀 분위기도 좋다”라고 안도한다. 이 감독은 이런 상황을 선수들의 공으로 돌린다. 겨우 내내 몸 관리를 착실히 했고 50일 가량 이어진 전지훈련에서 모두가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이런 성과가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막 엔트리에 들 수 있는 선수는 26명뿐이다. 누군가는 2군으로 내려가야 한다.

열심히 하는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가 나뉘어 있었다면 차라리 결정이 쉬었다. 이 감독이 겨울 동안 강조한 ‘팀 정신’에 어긋나는 선수들이 있었다면 역시 제외하기가 편했다. 그러나 이 감독은 “그런 선수들이 없다. 다들 열심히 했다”라며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 감독은 “개막 엔트리를 놓고 한 달 반 동안 고민을 했다”고 하면서 “정말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더라. 그 말을 실감했다”고 다시 한 번 씁쓸하게 웃었다.
사심 없이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애쓴 이 감독이다. 타격·수비·주루·팀 플레이·하고자 하는 의지·팀 융화·희생정신 등을 종합적으로 봤다. 머릿속에서 생각하면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갈 까봐 아예 종이에 적어 객관화된 수치로 판단하기도 했다. 담당 코치들의 의견도 종합했고 이미 그 의견이 적힌 문서는 이 감독의 손에 들어왔다. 최종 결정이 임박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쉽게 결재 사인을 내지 못하고 있는 이 감독이다. 선수들의 사기를 생각하면 도장을 들었다가도 내려놓기 일쑤다.
이 감독은 “어쩔 수 없이 떨어지는 선수들은 생긴다. 그런데 그 선수들이 다 열심히 했다. 그래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라고 하면서 “나도 선수 생활을 해봤다. 열심히 했는데 개막 엔트리에서 떨어지면 충격이 정말 크다”라고 선수들의 심정을 헤아렸다. 어쩔 수 없이 엔트리를 추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 과정이 너무 괴롭다는 게 이 감독의 하소연이다. 팀이라는 대명제에서 생각하려 하고 있지만 떨어질 선수들의 사기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픈 이 감독이다.
이해해주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이 감독은 “이런 마음을 선수들은 절대 모른다. 나도 선수 시절에 그랬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이 총대를 메겠다고도, 떨어진 선수들의 원망을 모두 받겠다고도 했다. 일찌감치 각오한 말투였다. 다만 한 가지 당부의 말은 잊지 않았다. 이 감독은 “언제든지 다시 올라올 수 있다. 너무 상처받지 말고 계속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거듭 당부했다. 2군에도 이런 후폭풍을 보듬도록 지시할 생각이다.
떨어진 선수들을 생각하면 책임감도 커졌다. 열심히 한 선수 중 선택을 받지 못한 이들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 이 감독의 생각이다. 그 선수들의 탈락과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1군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뿐이라는 게 이 감독의 각오다. 물론 이는 1군에서 살아남은 나머지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인 명제다. 자신이 현재 밟고 있는 1군 무대는 누군가가 그토록 염원했던 그 무대였음을 잊어서는 안 될 필요가 있다. 그런 정신과 책임감으로 무장한다면 SK의 야구는 더 강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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