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시판이 '노다지'다..가요계 "핫한 신조어 찾아요"
OSEN 이혜린 기자
발행 2014.03.30 10: 59

유명 기획사 임원 A씨는 수시로 온라인 게시판을 들여다본다. 인기 기사 댓글은 물론이고 베스티즈 등 연예 게시판, 남성 회원이 많은 MLB파크 등을 유심히 보는 게 매우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걸그룹 관계자라면 정치적으로 문제가 많은 일베조차도 빠뜨릴 수 없는 모니터 대상이다. 
유력 홍보대행사 관계자 B씨에게도 온라인 모니터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단순히 자신이 맡은 가수의 자료를 보는 게 아니다. 네티즌끼리 주고 받는 대화, 놀림을 받고 있는 다른 연예인과 관련한 패러디 글들, 각 포털이 제공하는 유머 게시판부터 주부들이 사연을 주고받는 게시판까지 모니터의 범위는 광범위하다. 
가요계가 네티즌들의 기발한 표현과 생활밀착형 심리 분석에 크게 기대고 있다. 홍보를 위한 신조어 찾기, 20대의 현실을 엿보는 주요 수단으로 온라인 게시판을 주목하고 있다.

# 네이밍 실력, 네티즌 못따라가
신조어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홍보수단이 된다. 최근 아이돌그룹의 컴백에 자주 쓰이는 '완전체 컴백'이라는 문구도 팬들이 먼저 쓴 단어. 유닛이나 개인활동이 많아져 그룹 전체로 활동하는 일이 흔하지 않자, 멤버들이 모두 모였을 때 '완전체'라며 기뻐한 것이 유례가 됐다. 발라드 가수들이 보도자료에서 흔히 쓰는 '꿀성대의 컴백', 댄스그룹이 주로 내세우는 '칼군무의 귀환' 등의 표현도 모두 네티즌에게 빚진 것이다. 온라인 게시판에서 팬들끼리 장난 삼아 주고 받는 말들이 기획사의 눈에 띄어 공식 보도자료 타이틀이 된 것이다. 
네티즌이 만드는 '대세'는 이전부터 활발해왔다. 현아의 별명 '패왕색', 유이를 스타덤에 올린 '꿀벅지', 아이유의 대표적인 수식어였던 '3단 고음' 모두 남성들이 많이 모이는 사이트에서 시작된 네이밍이 언론 및 대중에까지 퍼진 예다. 이 과정에서 처음 네이밍 당시의 다소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뉘앙스도 '대세'로 승화되기도 한다.
한 홍보관계자는 "가수와 관계자들이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네티즌이 붙인 별명보다 기발하긴 어렵다"면서 "네티즌이 어떤 모습, 어떤 컴백 전략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특정 동작이나 표정 등을 어떻게 부르는지 늘 모니터하고 이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세'를 이루는 신조어가 생겼을 때, 이를 표방한 컴백 전략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것도 피할 순 없다. 그래서 관건은,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다.  
 
# 요즘 가사, 온라인에서 배운다
최근엔 온라인 게시판을 장식하는 연애고민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지난 2월부터 두달 가까이 음원차트를 점령한 '썸'의 위력 때문이다. 흔한 사랑-이별 얘기를 반복하고, 일부 아이돌그룹들이 공상과학 영화를 방불케하는 거대 스토리텔링에 매달리는 동안 대중은 자신들의 연애담을 그대로 옮긴 '썸'에 반응한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팍팍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는 현재 20~30대가 연애에 앞서 망설이는 시기의 답답함을 다룬 이 곡은 기존 러브송과는 궤를 완전히 달리하며, 공감 가사의 힘이 얼마나 큰지 입증해내고 있다. '썸을 타다'와 같은 네티즌 신조어를 과감하게 곡 전면에 내세운 것도 신선한 전략이었다.
연이어 브로의 '그런 남자'가 1위에 오른 것은 '확인사살'이다. 일베라는 특정 사이트의 힘을 빌려 노이즈마케팅에 나섰다는 문제의 소지도 충분히 있지만, 지난해부터 수면 위에 오르기 시작한 데이트 성역할 논쟁을 '최초'로 다뤘다는 점에서 기존 작사가들의 반성을 끌어낼 여지도 있다. 호불호를 떠나 이 곡의 가사가 이같이 뜨거운 논쟁을 (이제야) 야기했다는 점은, 최근의 '진짜' 연애와 노래 가사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컸는지를 입증한 셈이기도 하다.
한 유명 제작자는 "'그런 남자'의 1위가 매우 씁쓸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오랜 기간 온라인을 달궈왔던 분야를 기존 가요계가 포착하지 못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고 평했다.
rinny@osen.co.kr
벨로체의 '그런 여자'-브로의 '그런 남자' 뮤직비디오 캡쳐(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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