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마술사’ 김수현 작가가 무서운 게 아니었다.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황금무지개’는 경쟁드라마이자 시청률 제조기 김수현 작가의 SBS ‘세번 결혼하는 여자’보다 더 무서운 ‘내부의 적’이 있었다. 바로 통속극의 진부한 설정과 함께 손영목 작가의 ‘메이퀸’과 소름끼치게 같았던 붕어빵 전개였다.
‘황금무지개’가 지난 30일 그동안 온갖 고난에 시달렸던 김백원(유이 분)과 서도영(정일우 분)이 행복한 웃음을 지으면서 5개월의 행보에 마침표를 찍었다. 상상 할 수조차 없는 탐욕스러웠던 권력 집착자 서진기(조민기 분)가 몰락하면서 권선징악의 결말을 맞았다.
이 드라마는 운명의 수레바퀴가 연결 지어준 일곱 남매의 인생 여정을 그리겠다는 기획의도로 출발했다. 출생의 비밀, 고부갈등, 살인, 불륜 등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총집합했다. 악의 축인 진기는 권력에 대한 집착에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고, 진기와 대립하는 백원은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지난 해 인기리에 종영했던 ‘메이퀸’의 손영목 작가가 집필했던 이 드라마는 해양을 배경으로 선과 악의 끊임 없는 대립이라는 설정이 빼도 박도 못하게 똑닮아 있었다. 여기에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여주인공의 성공 과정, 이를 방해하는 악의 세력과의 대립, 욕망에 사로잡혀 악행을 저지르는 주변인물들과의 갈등이 ‘메이퀸’과 ‘황금무지개’의 공통점이었다.
드라마 시작 전부터 자기복제의 시선을 받았던 이 드라마는 방영 내내 진부한 전개를 벗지 못했다. 도무지 만날 당하기만 하는 백원과 그의 가족들의 답답한 행보, 적수가 없을 정도로 막나가는 진기의 행태들은 숱한 막장 드라마들이 걸어왔던 오명의 길을 그대로 걸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전혀 놀랍지 않을 갈등 관계는 기존 통속 드라마나, 통속 드라마에서 더욱 심화된 갈등을 장착한 막장 드라마를 답습했다.
워낙 새로운 내용이 없었기에 신기한 반전조차 없었고, 단 한 회만 봐도 드라마 앞뒤 이야기가 대충 맞춰지는 기한 재주가 있는 드라마였다. 그렇다고 중간에 시청자가 쉽게 유입하진 못했다. 시청률이나 화제성에서 ‘메이퀸’을 따라잡진 못했기 때문. ‘메이퀸’은 막장 드라마 오명을 뒤집어쓰긴 했어도 시청률 30%를 넘보기도 하고, 매회 큰 화제를 일으켰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됐던 ‘황금무지개’는 경쟁 드라마인 ‘세번 결혼하는 여자’의 막판 뒷심에 시청률 2위로 밀려났다.

따뜻한 가족드라마를 내세웠지만 가족이 떼로 나와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 외에는 훈훈한 기운이 없었던 이 드라마는 진부하고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설정과 전개로 시청자 이탈이 심했다.
방영 전 김수현 작가의 작품과 맞붙어 고전이 예상됐지만, ‘황금무지개’의 흥행 실패는 경쟁작이 막강하다는 핑계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전작의 흥행 노선을 그대로 따라가겠다는 안일한 기획에 질려버린 안방극장의 매서운 선택이었음을 ‘황금무지개’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 보인다.
그나마 전혀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를 생동감 넘치게 연기한 박원숙, 조민기, 도지원, 김상중, 지수원 등 중견 연기자들과 안정적인 연기로 캐릭터의 맛을 살린 유이, 정일우, 차예련 등 젊은 연기자들의 호연이 드라마를 탄탄하게 뒷받침했다. 또한 초반 인기를 책임진 김유정, 오재무 등 아역 배우들의 힘도 컸다.
한편 ‘황금무지개’ 후속으로는 다음 달 5일부터 이동욱, 이다해, 왕지혜, 임슬옹 등이 출연하는 ‘호텔킹’이 방송된다. ‘호텔킹’은 국내 유일의 7성급 호텔인 '호텔 씨엘'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속녀와 그를 위해 아버지와 적이 된 총지배인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jmpyo@osen.co.kr
MBC 제공, ‘황금무지개’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