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 히데오가 메이저리그에서 한창 활약을 펼치던 시절, 동네야구에서 그의 투구폼을 따라해보지 않은 투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토네이도 투구법'은 타자에게 등을 보여줄 정도로 몸을 돌린 뒤 힘차게 회전하며 공을 뿌려서 붙은 별명이다. 노모는 이 투구법과 주무기 포크볼로 메이저리그 신인왕을 수상하는 등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구대성의 투구폼도 '베이스볼 키드'들이 수없이 따라했다. '변형 토네이도'라고 불리는 이 투구폼으로 구대성은 한미일 프로야구를 모두 섭렵한 선수가 됐다. 노모의 투구폼과 비슷한 면이 있는데, 구대성은 중견수와 눈이 마주칠 정도로 몸을 돌려 와인드업을 하고 공을 뿌렸다. 일단 공을 끝까지 숨겨서 나오는데다가 몸을 돌리는 사이 공의 변화까지 더할 수 있어 타자들은 그를 상대하는 데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타자들의 타격폼이 그들만의 지문과 같다면, 투구폼 역시 투수들에게는 자신만의 무기와도 같다. 타격폼은 천차만별이라도 일단 스윙이 시작되면 궤적은 한정되어 있는 반면, 투수는 자신만의 폼으로 끝까지 공을 던진다. 타자의 타격폼은 상대를 위협할 무기가 될 수 없지만, 투수는 투구폼 하나로 활약하는 게 가능하다. 야구는 투수가 공을 던져야 시작되는 경기, 주도권은 투수가 쥐고 있다.

현장에서 스카우트들이 아마추어 선수들을 선별할 때 반드시 점검하는 항목이 바로 투구폼이다. 투구폼은 개조하기 쉽지가 않기 때문에 처음 뽑을 때 투구폼이 좋은 선수를 선발하려고 한다. 이때 공을 숨겨서 나오는 이른바 '디셉션'이 좋은 선수는 가산점을 받는다. 여기에 구위까지 갖춘다면 금상첨화다.
류현진(다저스)이나 윤석민(볼티모어)처럼 정석적인 투구폼을 유지하는 선수도 있고, 앞에 소개한 선수들처럼 자신만의 투구폼으로 활약하는 선수도 있다. 특히 특이한 투구폼은 짧은 이닝을 소화하는 불펜투수들에게 많은 편이다. 낯선 투구폼으로 이득을 보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최대한 적게 보여줘야 하는데, 선발투수는 타순이 돌다보면 투구폼이 눈에 익어 생각보다 크게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오승환(한신)은 일본진출 이후 '이중키킹' 논란에 휩싸였다. 와인드업을 하고 곧바로 공을 던져야 하는데, 잠시 멈춰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다는 항의였다. 그렇지만 오승환은 '한국에서부터 계속 그렇게 던졌다'고 일관성을 내세웠고 지금은 논란이 수면아래로 가라앉은 상황. 대포알 속구를 가진 오승환은 이와 같은 투구폼을 더해 한국에서 역대 최고 마무리투수로 활약했다.
작년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인 손승락 역시 특이한 투구폼으로 눈길을 끄는 선수다. 공을 던질 때까지는 정석대로 투구폼을 유지하지만, 던진 뒤 펄쩍 점프를 한다. 마치 가위차기를 하는 것처럼 점프를 하는데 이는 타이밍을 빼앗기 위한 것보다는 자신만의 투구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공중부양 투구폼으로도 불리운다.
'앞을 볼 필요도 없다' 형도 있다. 몇몇 투수들은 투구를 할 때 눈을 질끈 감거나 아니면 아예 하늘을 보고 던진다. 유창식(한화)은 눈을 감고 던지던 걸 올해부터 눈을 뜨기로 했다. 특히 홍상삼(두산)은 공중을 보면서 던지기로 유명하다. 수만번 공을 던져 온 투수들은 굳이 포수미트를 보지 않아도 몸이 스트라이크와 볼을 기억한다고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투구밸런스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보며 던지는 걸 주문하는 지도자도 있다.
넥슨이 최근 리뉴얼 오픈한 프로야구 인기게임 '프로야구 2K14'는 실제 선수들의 다양한 투구폼을 적극 반영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내가 직접 선수들의 투구폼을 따라해볼 수도 있지만, 화면 속 선수들을 조종하며 개성 넘치는 투구폼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는것도 가능하다.
야구 전문가들 가운데는 '특이한 투구폼으로 롱런을 하기 힘들다. 신체에 무리가 가는 폼인데, 그만큼 부상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렇지만 정석적인 투구폼으로 던지다가 부상이 찾아오는 선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만의 투구폼으로 긴 시간동안 활약하는 선수도 얼마든지 있다. 지금 마운드위에서 투수들이 던지는 투구폼은 그의 땀방울이 수없이 들어간 결과물이다. 그들의 노력 만큼이나 독특한 투구폼은 야구를 보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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