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실점하고 승리투수,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4.04.01 08: 23

필라델피아 필리스 에이스 클리프 리(36)가 힘겨운 시즌 출발을 했다 .
리는 1일(이하 한국시간) 알링턴의 글로브 라이브파크에서 벌어진 '2014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전에 선발투수로 출격, 5이닝 11피안타 1탈삼진 8실점을 기록했다. 리가 한 경기에서 8점 이상 허용한 것은 지난 2010년 8월 22일 볼티모어전(5⅔이닝 10피안타 8실점) 이후 약 4년 만이다. 당시 리는 홈런 4방에 8점을 내줬지만, 이날은 홈런 1개에 집중타를 허용하며 대량실점을 했다.
5이닝 8실점, 실제로 나오기 쉽지 않은 기록이다. 웬만한 감독이라면 선발투수가 8점이나 내주도록 가만히 두지 않는다. 이런 기록이 나오는 과정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투수를 바꾸거나 할 새도 없이 점수를 내줄 때다. 예를 들자면 5회까지 4실점으로 버티던 투수가 만루홈런을 맞고 바뀌는 경우다. 두 번째는 투수가 실점한 것 이상으로 타자들의 방망이가 터지는 경우다. 이날 리는 후자였다. 리가 무참히 무너졌지만, 필라델피아 벤치는 에이스 리에게 5회까지 맡겨 승리투수 요건을 채우도록 했다.

결국 리는 5이닝 8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따냈다. 과거 10이닝 무실점을 하고도 승리를 따내지 못하는 등 불운한 기억이 많았던 리는 개막전 부진에도 작은 보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리는 평균자책점 14.40으로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
과연 5이닝 8실점 승리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 희귀한 기록일까. 자주 나오는 기록은 결코 아니다. 8실점 이상 기록하고 승리투수가 된 기록은 200건이 넘는다. 다만 기록의 대부분은 과거 메이저리그 초창기에 집중되어 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이날 리를 포함해 단 8건밖에 되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 나온 기록은 지난해 제레미 헬릭슨(템파베이)이 볼티모어를 상대로 7⅔이닝 8실점으로 승리를 거둔 일이다.
그렇다면 가장 많은 점수를 내주고 승리투수가 된 선수는 누가 있을까.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1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가 딱 1명 있었다. 1918년 8월 3일, 세인트루이스 진 팩커드는 8⅓이닝 15피안타 12실점을 하고도 승리투수가 됐다. 팀은 16-12로 승리를 거뒀는데, 팩커드는 꿋꿋하게 마운드를 지켰다. 그 해 팩커드는 12승 12패 182⅓이닝 평균자책점 3.50을 기록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투수 능력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승수는 점차 그 중요도가 낮아지고 있다. 많은 승리를 올린 투수가 좋은 투수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승리라는 것에는 운이 상당히 많이 개입되어있기 때문이다.
전날 류현진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7이닝 무실점 완벽한 투구를 펼쳤지만 불펜방화로 10분 만에 승리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리는 최악의 피칭을 하고도 타선 도움으로 승리를 챙겼다. 그것이 야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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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링턴=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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