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션은 관계없다.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페타지니처럼 칠 수 있는 타자를 원한다.”
지난해 11월 LG 송구홍 운영팀장은 선호하는 외국인타자를 명확히 밝혔다. 당시 송 팀장은 “우리 팀이 좌타라인이 강한 만큼 외국인타자는 우타자면 좋겠지만, 좌타자라도 잘 친다면 상관없다. 페타지니도 좌타자 아니었나. 페타지니만큼 잘 치는 타자가 오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고 페타지니 수준의 외국인타자를 데려오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1999시즌과 2001시즌 일본프로야구 야쿠르트에서 홈런왕을 차지했던 페타지니는 2008시즌 중반 LG에 합류했다. 2009시즌까지 LG의 4번 타자로 굳건히 자리했고 2시즌 동안 183경기에 출장, 타율 3할3푼8리 33홈런 135타점 OPS 1.022(출루율 4할6푼2리·장타율 .560)로 괴력을 과시했다.

당시 마흔에 가까운 노장이라 수비와 주루플레이에 한계가 보였다. 그럼에도 페타지니는 명백히 LG 프랜차이즈 최고 외국인타자였다. 기록에서 나타나듯 선구안 컨택 힘 3박자를 모두 갖췄고 득점권 타율도 3할3푼7리로 해결사 기질도 있었다. 페타지니가 떠난 후 LG는 거의 매년 4번 타자가 바뀌었는데, 누구도 페타지니 만큼의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다. LG는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2013시즌에도 팀 장타율 .386으로 5위, 팀 홈런 59개로 8위에 그쳤다. 페타지니와 같은 타자가 합류하길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페타지니의 재림을 원하던 상황에서 지난 1월 10일 LG는 새 외국인타자로 스위치히터 조쉬 벨을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벨은 1일 잠실 SK전에서 홈런 2개 포함 4타수 3안타 4타점 1볼넷의 만점활약을 했다. 이날 벨은 3회 SK 외국인 강속구 좌투수 조조 레이예스의 144km 컷패스트볼에 좌월 투런포를 날렸다. 9회에는 사이드암투수 백인식의 가운데 몰린 패스트볼에 우월 투런포를 터뜨렸다. 한국프로야구 통산 다섯 번째 한 경기 양타 홈런이자 벨 자신의 통산 네 번째 기록이었다. 이로써 벨은 2014시즌 첫 3경기서 타율 5할 3홈런 6타점 OPS 1.850(출루율 6할·장타율 1.250)을 찍었다.
시범경기, 그리고 3월 29일 개막전까지만 해도 벨의 장점은 선구안과 수비인 것 같았다. 선구안 하나만 놓고 보면 페타지니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나쁜 공에 배트가 나가지 않았다. 3루 핫코너 수비는 첫 시범경기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합격점을 받았다. 특히 송구 능력은 메이저리그서도 최정상급으로 평가받을 만큼 대단했다. 그런데 30일 두산과 개막 2연전 두 번째 경기서 적시타로 시즌 첫 안타를 신고했고, 홈런까지 기록했다. 상대투수 노경은의 변화구를 그야말로 받쳐놓고 쳤다.
벨은 1일 경기를 앞두고 “원래 변화구에 강한 편인가? 아니면 당시 변화구를 예상했던 건가?”라는 질문에 “특별히 변화구에 강하진 않다. 그렇다고 패스트볼에 약한 편도 아니다. 변화구를 예상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냥 내 타격 존에 들어와서 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답했다. 덧붙여 “무엇보다 내 타격을 해서 좋은 타구를 만든 것에 만족한다”고 웃었다.
물론 이제 겨우 3경기했다. LG 김기태 감독 또한 올 시즌 외국인타자들의 명암이 갈리는 시기에 대해 “지금 당장 실력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최소 100타석은 봐야 한다. 100타석 이후에는 전력분석이 마무리될 것이다. 강점과 약점이 명확히 드러나고 나서, 그 타자의 진짜 실력이 어떤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벨의 타격이 선구안이 바탕이 되고 있다는 점에선 충분히 긍정론을 펼칠 수 있다. 변화구 유인구 승부가 많은 한국 투수들을 상대하는데 있어, 좋은 선구안은 위력을 떨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수비서 정성훈의 1루 전향으로 LG의 아킬레스건이 된 3루를 완벽히 메운 것도 엄청난 플러스 효과다. 올 시즌 벨을 포함한 9명의 외국인타자 가운데 벨 정도의 3루 수비를 펼칠 수 있는 타자는 없다. 모든 팀들이 외국인타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 타격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에 대다수가 1루수 혹은, 코너 외야수다. 페타지니 역시 수비에 있어선 돋보이지 않는 수준의 1루수였다.
벨은 지난 3월 28일 시즌 개막을 하루 앞두고 “타율 홈런 타점과 같은 기록을 목표로 삼고 있지는 않다. 기록보다는 볼을 얼마나 잘 맞추느냐에 신경 쓰겠다. 8번을 잘 쳐도 8번 모두 아웃 당할 수 있는 게 야구다. 그래도 나는 정확히 잘 맞은 타구, 좋은 타구를 만드는 데에 집중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긴 시즌 동안 꾸준함을 보이는 데에 중점을 두겠다”고 각오를 다진 바 있다. 벨이 자신의 다짐처럼 골든벨을 울린다면, LG에도 승리의 종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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