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의 만루 대처론, “내게 밥상 왔다 생각”
OSEN 윤세호 기자
발행 2014.04.02 06: 25

LG 김기태 감독이 만루상황에 대처하는 타자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 감독은 1일 잠실 SK전을 앞두고 정의윤에게 “개막 첫 경기 좋았는데 두 번째 경기는 아까웠다. 거기서 쳤으면 시즌 첫 두 경기서 4타점이나 올리고 고과도 확 뛰었을 텐데”라고 말했다. 이에 정의윤도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배트를 다잡고 타격 연습에 나섰다.
김 감독이 말한 상황은 지난 3월 30일 잠실 두산전 5회초와 6회초다. 정의윤은 5회초 무사 만루에서 최경철 대신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으나 2루 플라이에 그쳤고, 6회초에는 1사 만루서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미 LG가 큰 점수차로 리드하고 있었기 때문에 승부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즌 후 고과산정 기준이 개인기록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만큼, 정의윤에게 있어 분명 아쉬움이 남을 만했다.

김 감독은 현역시절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좌타자였다. 1994년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좌타자 홈런왕이 됐고 통산 OPS도 .925에 달한다. 집중 견제 속에서도 80타점 이상을 기록한 시즌이 5시즌이나 된다. 특히 1999시즌 3번 타자 이승엽이 홈런 54개를 쳤음에도, 4번 타자로서 88타점을 올렸다. 그야말로 찬스에서 더 집중력을 발휘하는 클러치히터였다.
정의윤과의 대화가 끝난 후 김 감독에게 현역시절 만루 상황에 어떻게 대처했었는지 물었다. 김 감독은 “‘내게 드디어 밥상이 왔구나’하고 그 상황을 즐겼던 거 같다”며 “매 이닝 내 타석이 오기 전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를 상상했다. 내 타석이 한 참 남아있어도 2사 만루까지 가는 경우를 염두에 두고 투수와의 어떻게 승부할지 시뮬레이션하곤 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김 감독은 “만루 같은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서면 유난히 더 칠 것 같은 타자가 있기 마련이다. 팬들은 그런 선수를 더 좋아한다”며 “실패하는 것부터 생각하면, 절대 찬스에서 한 방을 날릴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주자를 불러들일 수 있을지 미리 준비해야한다”고 ‘준비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리그를 지배하고 있는 타자들 대부분이 투수 분석과 이미지 트레이닝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추신수가 매일 가장 먼저 출근해 그날 상대 선발투수 영상을 보는 것도 이미지 트레이닝을 위해서다. 박용택 역시 취침 전 상대 선발투수와의 승부를 머릿속에 그린다고 한다. 
김 감독 또한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은 “현역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단 하루도 그냥 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뛰었을 당시에는 선발투수 예고제가 아닌 시즌이 대부분이었다. 자기 전에 상대팀 선발 로테이션을 계산하면서 두 세 명의 투수들과 어떻게 상대할지를 미리 그렸다. 은퇴하고 나니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필요가 없어졌는데, 정말 큰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 들더라”고 말한 바 있다.
김 감독은 이날 정의윤을 5번 타순에 배치시켰다. 이전 경기서 찬스를 놓쳤음에도 다시 한 번 찬스가 많이 오는 타석에 정의윤을 넣었다. 정의윤이 누구보다 바쁜 겨울을 보낸 것을 아는 만큼, 확실한 수확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비록 정의윤이 득점권 찬스를 맞이하지는 못했지만, 정의윤은 2회말 첫 타석에서 중전안타를 때리며 이전 경기 침묵에서 탈출했다. 
drjose7@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