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의 황제는 건재했다. 토크쇼에서 부른 노래 하나로 자신을 언제나 환영하는 팬들에게 ‘가수 이승환의 팬이라는 사실 자체를 뿌듯하게 만드는 선물’을 안겼다. 반백살이라고 놀림을 당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가수 이승환의 울림이 있는 목소리일 터다. 이승환이 말보다 센 화려한 라이브 무대 하나로 가수 이승환의 ‘어마무시한’ 힘을 증명했다.
이승환은 지난 2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얼굴 없어야 할 가수’ 특집으로 후배 정지찬, 정준일, 린과 함께 출연했다. 그는 이날 김국진과 동갑인데다가 이혼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반백살 놀림을 당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또한 자신보다 어린 김구라의 반말 공격에 발끈하기도 하고, 히트곡 ‘천일동안’을 뛰어넘는 곡이 나오지 못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천일동안’ 이후 추락했다”고 거침 없이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마니아만 좋아하고 보편적인 공감을 얻고 있지 못하다”고 자신의 음악에 대해 혹독한 평가를 내놓았다.

사실 이날 방송은 뛰어난 입담을 가진 린의 ‘셀프디스’와 어디선가 본 듯 하고 들은 듯 하지만 친근하진 않은 정지찬과 정준일에게 호기심이 쏠렸다. 이승환은 후배들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구심점을 잡는 역할을 자청한 듯 보였다. 후배들을 앞질러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후배들의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배려가 눈에 띄었다.
특히 후배 린의 노래를 듣고 “뺏고 싶다”라고 돌발발언을 할 정도로 후배들을 치켜세웠다. 그는 린의 노래에 흠뻑 취한 후 “누구라도 린 씨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후배의 노래를 극찬했다. 남자친구 이수가 있는 린에게 물론 노래지만 뺏고 싶다는 농담 섞인 칭찬을 한 게 가장 강력한 수위의 발언이었다. 이날 이승환은 시종일관 조곤조곤 대화를 했다.
다수의 게스트가 출연한 방송이기에 이승환의 노래 인생 등 이야기는 많이 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승환은 이날 정지찬과 함께 ‘물어본다’를 열창했는데 왜 그가 라이브의 황제라고 불리는지를 다시 한번 알 수 있게 했다.
그는 노래를 부르던 중 후렴구에 다다르자 폭발적인 고음을 쏟아내고, 화려한 무대 매너로 시청자들의 감흥을 이끌어냈다. 무대 밑으로 내려와 MC들의 흥을 돋우며 시원시원한 가창력을 과시하는 그의 모습은 데뷔 25년의 내공이 절로 느껴졌다. 힘찬 몸짓과 그보다 더 힘이 느껴지는 노래로 야심한 밤 안방극장을 흥겹게 했다.
이승환은 콘서트 무대를 주름잡는 ‘라이브의 황제’로 통한다. 작은 체구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힘차게 뿜어나오며 울컥하게 만드는 음색이 대중을 사로잡는 가수다. 정식 음악방송이 아닌 토크쇼에서 보여준 잠깐의 노래마저도 마치 콘서트장을 만든 관록이 있는 것. 덕분에 이날 ‘라디오스타’는 농담 삼아 MC들이 내뱉는 ‘고품격 음악방송’을 실천하는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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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