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나오는 선두타자, 추신수는 공포였다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4.04.03 06: 52

투수들에게 가장 맥빠지는 순간이 언제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말한다. '풀카운트까지 끌고가서 계속 커트당하다가 안타나 볼넷을 내줄 때다.'
타자의 임무는 상대투수가 싫어하는 상황을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것이다. 특히 톱타자는 투수를 상대로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지고 최대한 많이 출루하는 게 미덕이다. 바로 추신수(32,텍사스)가 거액을 받고 텍사스 유니폼을 입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일(이하 한국시간)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은 추신수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난 경기였다. 이날 추신수는 3타수 2안타 2사사구(1볼넷 1몸에 맞는 공)으로 5번 가운데 4번 출루에 성공하면서 펄펄 날았다. 현지 기자가 "추신수는 마치 1루에 자유이용권을 받은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특히 추신수는 1-2로 뒤진 7회 출루에 성공해 동점 득점을 올렸고, 9회에는 경기를 3-2로 끝내는 끝내기 득점을 기록했다. 팀이 필요한 순간 출루에 성공했고 홈에 돌아온 추신수는 이날 승리의 주역이었다. 론 워싱턴 감독까지 "추신수가 경기 승리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눈에 띄는 점은 5번의 타석 모두 선두타자로 나섰다는 점이다. 추신수는 1회부터 9회까지 홀수 이닝에는 계속해서 선두타자로 나갔고 5회를 제외하고 모두 출루에 성공해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 추신수 본인도 "오늘 내가 할 일은 다한 것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물론 추신수가 매이닝 선두타자로 나선 것은 우연이 겹친 결과다. 그렇지만 상대 투수들은 까다로운 타자 추신수가 계속해서 선두타자로 나오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추신수는 각 이닝의 선두타자로 나섰을 때 성적이 평균성적보다 좋다.
추신수의 통산 타율은 2할8푼8리, 출루율은 3할9푼이다. 그리고 선두타자로 경기에 나섰을 때 타율은 3할1푼으로, 출루율은 3할9푼7리로 올라간다. 그 비결에 대해 추신수는 "특별히 신경쓰지 않는데 그렇게 됐다"고 본인도 신기해 했지만, 선두타자로 나섰을 때 집중력이 더 좋아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더욱 뛰어난 것은 1회 첫 타자일 때 성적이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 통산 245경기에서 1회 선두타자로 나섰는데, 타율 3할4푼3리 출루율 4할2푼9리 OPS 1.039를 기록했다. 1회 선두타자로 한정한다면 추신수는 리그 MVP급 타자로 탈바꿈한다.
감독들은 심혈을 기울여 타순을 짜지만, 1회가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운에 맡겨야 한다. 그럼에도 고민을 거듭하는 이유는 1회 득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올 시즌 텍사스의 과제는 어떻게든 추신수를 선두타자로 많이 내보내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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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브 라이프 파크(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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