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상황이었지만 진해수(28, SK)의 표정에는 큰 동요가 없었다. 오히려 입술을 깨물며 상대 타자들을 노려봤다. 상대와의 기 싸움에서 어느덧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고 있었다. 몰라보게 달라진 진해수의 강심장이 SK의 승리를 이끌었다.
SK는 5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경기에서 1-2로 뒤진 6회 4점을 뽑아내며 역전에 성공한 끝에 6-2로 이겼다. 선발로 나선 로스 울프가 6이닝 2실점으로 잘 막았고 집중력이 강해진 타선도 6회 집중타를 터뜨리며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제 못지않은 일등공신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7회 마운드에 올라 위기를 진화한 진해수였다.
올해 SK가 가진 6경기 중 5경기에 등판하며 마당쇠 몫을 하고 있는 진해수는 이날 5-2로 앞선 7회 무사 1루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선발 울프가 선두타자 김회성에게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한 직후였다. 투구수에는 다소 여유가 있었지만 이만수 SK 감독은 한화가 왼손 한상훈을 대타로 내는 것을 보고 진해수로 교체를 결정했다. 3점의 여유가 있지만 아직 3이닝이 남아 있는 상황. 진해수로서는 또 한 번의 시험대였다.

진해수가 올라오는 것을 본 한화 벤치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곧바로 다시 타자를 우타 요원인 이양기로 바꿨다. 그래서일까. 진해수는 첫 타자 승부에서 볼넷을 내줬다. 주자가 불어났고 한 방이면 동점인 긴박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마운드 위의 투수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진해수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에서 더 강해진 투수가 되어 있었다.
다음 타자 이용규를 상대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몸이 풀린 듯 했다. 140㎞ 중반대의 강속구를 과감하게 꽂아넣었다. 맞히는 능력에서는 리그 정상급인 이용규도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7구째 한가운데 직구를 과감하게 던져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냈다. 두 번째 타자는 지난해까지 한솥밥을 먹었던 정근우였다. 하지만 4구째 좌익수 뜬공을 유도해내며 또 하나의 큰 산을 넘겼다.
마지막 관문은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는 외국인 타자 펠릭스 피에였다. 한 방이 있는 선수라 오히려 이용규 정근우보다 더 부담스러운 타자였다. 그러나 진해수는 초구부터 과감히 스트라이크를 던지며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고 1B-2S에서 몸쪽을 치르는 슬라이더를 던져 피에를 얼어붙게 했다. 피에가 빠졌다며 다소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삼진콜은 문학구장에 우렁차게 울려퍼진 뒤였다. 한화의 추격 의지는 사실상 여기서 꺾였다.
진해수는 마무리 박희수를 제외하면 SK의 유일한 좌완 불펜 요원이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급성장했다는 평가로 코칭스태프도 진해수에 많은 공을 들였다. 전지훈련에서 생각보다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볼넷은 주지 않겠다”라는 강한 자기암시, 그리고 투심의 장착과 함께 계속 성장하고 있다. 많은 경기에 나섰지만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자신하고 있기도 하다. 말 그대로 요즘은 던지는 것이 즐거운 때다.
지난해 5월 KIA와의 트레이드 당시 진해수를 눈여겨보는 이는 거의 없었다. 가장 굵직한 선수였던 송은범 김상현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1년 여가 흐른 지금. 진해수는 당시 트레이드에 연관된 4명의 선수 중 가장 성공한 선수로 불리기 손색이 없다. 이제 진해수가 없는 SK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한 판이었다. SK는 진해수의 맹활약을 등에 업고 3연승을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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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