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식도 좋은데 은퇴경기를 하는 게 더 좋지 않겠어? 그래야 팬들도 더 좋아할 텐데 말이야”
5일 SK와 한화와의 경기가 열린 문학구장은 하루 종일 박경완 SK 퓨처스팀(2군) 감독의 이야기가 화제였다. SK 구단 역사상 첫 영구결번의 주인공이 된 박 감독은 이날 공식 은퇴식을 치르고 프로야구의 전설이 됐다. 구단에서 각별히 신경을 써 행사를 기획한 가운데 이를 지켜보는 경기장의 모든 관계자들이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이는 한화 구단과 한화 팬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야구계의 ‘대선배’라고 할 수 있는 김응룡 감독도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딱 하나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은퇴경기를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 감독은 “은퇴경기를 해야 팬들도 경기를 보기 위해 더 많이 경기장을 찾고 의미도 클 것”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드러냈다. 실제 메이저리그의 경우 대스타들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해 은퇴경기라는 방법이 보편화되어 있다. 딱 하루 로스터에 등록시켜 은퇴경기를 치르는 것이다.

다만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아직까지 어려운 점이 많다. 우선 은퇴시점과 은퇴식의 시차가 꽤 나는 경우가 있다. 은퇴경기의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1군 엔트리 등록도 부담이다. 가뜩이나 “엔트리 인원이 적다”라고 하소연하는 1군에서 은퇴경기를 위해 1명의 선수를 2군으로 내려 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은퇴를 한 선수들이 이런 부담을 고려해 고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화는 영구결번 선수 중 은퇴경기를 두 차례나 연 구단이다. ‘전설’에 대한 대우가 각별하기로 유명한 한화만의 자랑이다. 한화는 현재 장종훈(35번) 송진우(21번) 정민철(23번)이라는 기라성 같은 당대의 대스타들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9개 구단 중 가장 많다. 그리고 이 중 장종훈 송진우 코치는 은퇴경기를 치르며 팬들과 마지막 추억을 공유했다.
장종훈 타격코치는 2005년 은퇴 경기를 사실상 두 번이나 치렀다. 올스타전이 첫 번째였다. 당시 시즌 중 은퇴로 마음을 굳힌 장 코치는 초청선수로 올스타전 명단에 합류했고 대타로 나서 한 타석을 소화했다. 상대 투수 정재훈(두산)의 정중한 인사와 함께 타석에 들어선 장 코치는 경기 후 후배들의 헹가래를 받았고 문학구장에 모인 8개 구단 팬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박수로 ‘영원한 홈런왕’의 마지막 길을 축복했다.
구단에서도 시즌 막판이었던 9월 자체 은퇴경기를 진행했다. 포스트시즌 순위다툼이 치열할 시기였는데 한화의 용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웅’의 마지막 경기에 구름관중이 들어찬 것은 당연했다. 삼진을 당해도, 내야 땅볼을 쳐도, 그저 홈런왕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데 많은 팬들이 행복을 느꼈던 경기였다.
송진우 투수코치는 2009년 9월 은퇴경기를 했다. 9월 23일 대전 LG전에서 선발 등판해 한 타자를 상대하고 마운드를 류현진에게 넘겼다. 신구 에이스의 세대교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해져 큰 관심을 받았다. 정민철 투수코치도 은퇴경기를 치르려 했지만 후배들의 자리를 위해 고사한 케이스다. 다만 성대한 은퇴식을 통해 팬들의 큰 환호를 받았고 이날 후배들은 히어로즈(현 넥센) 상대로 9점을 뒤집는 짜릿한 역전승을 거둠으로써 선배의 마지막 길에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한화는 팀 레전드에 대한 대우가 각별했다. 어쩌면 다른 구단도 모두 하는, 형식적인 절차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화는 특별한 감이 있다. 그 스타들은 지금 모두 코칭스태프나 구단 프런트에서 여전히 이글스의 이름 아래 활동하고 있다. 이정훈 송진우 장종훈 한용덕 정민철과 같은 ‘스타’들이 대표적이다. 80년대 빙그레의 줄무늬 유니폼을 기억하는 세대, 1999년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기억하는 세대, 그리고 지금 세대에 이르는 모든 팬들이 이 ‘스타’들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는 것은 분명 큰 가치가 있다.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한 무형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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