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배우 장혁은 드라마 '추노', '아이리스2', '뿌리깊은 나무' 등에서 보여준 선 굵고 남자다운 캐릭터를 벗고 섬세하고 치밀한 연기로 돌아왔다. 그동안 그가 보여준 연기와는 사뭇 다른 캐릭터로 새로운 연기변신을 시도한 것.
매번 다양한 모습을 연기하는 장혁. 그는 이번에는 영화 '가시'(감독 김태균)를 통해 새로운 옷을 입고 스크린으로 컴백한다. 이번에 장혁이 맡은 역은 전교생이 흠모하는 인기 만점 체육교사 준기. 그는 지금껏 보여준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에서 벗어나 한순간 설렘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된 치명적인 남자의 모습을 열연했다.
장혁이 ‘가시’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베드신까지 있는 이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이에 장혁은 시나리오를 보고 난 후 감정의 동요가 있었다고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중기라는 남자는 사실 반응을 해주는 역할이에요. 일상 속에서 설렘을 느끼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모습이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했고요. 또 하나는 이 영화가 주장하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중기라는 남자가 과연 영은(조보아 분)을 사랑했을까 안 했을까? 충동적이었나? 사실 결론이 명확하지 않거든요. 감독님한테 ‘이를 보고 관객들이 어떻게 느낄까’라는 질문으로 설득당했어요. 저도 그 부분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는 이 영화를 위해 파격적인 베드신을 피해갈 수 없었다. 베테랑 배우인 장혁도 베드신 경험이 많이 없다고 하니 걱정이 많았을 터. 김태균 감독은 데뷔 후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베드신을 연출했다고 한다. 또 신인 여배우와 합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 장혁의 부담감이 상당했을 듯하다.
“베드신이 자극적이냐 이런 부분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정서적으로 어떻게 사람들에게 공감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가시’에서는 현실적인 상황이 아닌 오해에서 비롯한 상상을 베드신으로 표현해야 했어요. 그래서 이 신을 찍을 때 뭔가를 하자 그런 건 없었어요. 감독님과도 얘기했지만 틀을 짜고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냥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자 생각했었거든요. 감정적인 느낌만 전달된다면 옷을 걸치고 안 걸치고는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고 생각했고요. 그냥 촬영을 하면서 감정에 좀 더 몰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가시’의 포스터를 유심히 보면 스릴러 영화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포스터 속 ‘심장을 파고드는 잔혹한 집착’이라는 문구와 장혁의 알 듯 모를듯한 표정연기 만으로는 이 영화를 다 설명할 수 없어 보인다. 장혁은 ‘가시가’ 영화에 대해 스릴러가 아니라는 것을 미리 말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영화 속 상황이 집착이라기보다는 중독이라는 말이 더 맞는 거 같은데요. 집착은 일방적이지만 중독은 어떤 상황을 느꼈고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까요. 단순히 집착이 아닌 중독된 사랑을 이해하셨으면 좋겠어요. 또 감독님의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던지는 ‘사랑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감독님의 의도대로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장혁은 ‘가시’를 통해 김태균 감독과 오랜만에 재회했다. 그와 김태균감독은 영화 ‘화산고’로 인연을 맺은 바 있다. ‘화산고’ 이후 전혀 다른 장르로 다시 만난 두 사람. 장혁은 오랜만에 만난 김태균 감독이 많이 변했다고 털어놨다.
“감독님을 처음 뵀을 때가 지금 제 나이 정도였는데요. 지금은 연세가 많이 드셨는데 정서적으로 많이 변하신 느낌이에요. ‘화산고’를 찍을 당시에는 장르적으로 액션이 많았었다면 이번에는 감성적이고 감정적이었기 때문에 서로 대화를 통해서 영화에서 갖고 갈 수 있었던 여지가 있었어요. 또 영화 자체로도 상황적인 변화가 많이 있었고요.”
장혁은 인터뷰 내내 연기에 관련된 질문에는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그가 가진 연기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어 보였다. '가시'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지금 그는 영화 '순수의 시대'를 촬영하고 있다고. 계속해서 활동을 하면 쉬고 싶을 만도 한데 장혁은 전혀 그렇게 않다고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오히려 현장에서도 쉴 수 있다고 말했다.
"쉬고 싶다는 건 배부른 얘기 같아요. 좋은 선배들의 많은 부분을 볼 기회가 현장인데요. 가공되고 잘 다듬어진 영화나 드라마 속의 모습보다 날것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방법은 현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니까요. 또 '오늘이 어제 그렇게 살고 싶었던 날이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현장에 나가고 싶어하는 배우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쉬고 싶다는 건 진짜 배부른 소리죠."

사극부터 현대물까지 다양한 장르와 영역을 넘나들며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장혁. 그는 아직 시대극을 해보지 못했다며 언젠간 꼭 해보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근대화를 그린 시대극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조선시대를 그린 사극은 꽤 했었는데 시대극은 아직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진짜 좋아하는데요. 이 시대가 격동기잖아요.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민을 표현해 보고 싶어요. 그런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 가지 감동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장혁은 매우 진지하게 인터뷰에 임했다. 그는 데뷔 18년 차 배우임에도 아직도 연기에 대한 열정은 신인처럼 뜨거웠다.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그에게서 진짜 배우가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마지막으로 장혁은 다양한 느낌의 배우가 되고 싶다고 얘기했다.
"앞으로 지금처럼 배우라는 수식어를 이름 앞에 계속 쓸 수 있는 미래가 됐으면 좋겠어요. 또 다양한 느낌의 배우가 되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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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