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저 베테랑들은 대단해. 시즌 시작하려니 컨디션이 딱 올라왔어.”
지난 3월 28일. LG 송구홍 운영팀장은 2014시즌 개막을 하루 앞두고 특유의 함박웃음을 지었다. 잠실구장에서 열린 시즌 전 마지막 훈련에서 이병규(9번) 박용택 이진영 정성훈 네 베테랑 타자들이 연이어 큼지막한 타구를 날렸고, 송 팀장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듯 “나이스 배팅!”을 외쳤다.
2014시즌이 막을 연지 10일이 지난 지금. 이들은 단체 대폭발 중이다. 정성훈이 타율 5할로 타격 부문 1위에 자리한 것을 비롯해 박용택(3할5푼3리), 이병규(3할1푼6리), 이진영(3할1푼6리)도 맹타를 휘두른다. 네 선수는 지난해에도 모두 3할 이상의 타율을 찍었고 타격 부분 상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놀랍게도 이들 넷의 나이를 합치면 140세가 넘는다. 그리고 이보다 더 놀라운 점은 넷 모두 시간을 거부한 채 꾸준히 실력을 유지하거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병규는 지난해 타율 3할4푼8리로 커리어 두 번째, 그리고 한국프로야구 통산 최고령 타격왕에 올랐다. 이병규의 타율 커리어하이가 1999시즌 3할4푼9리였다는 점을 돌아보면, 무려 14년을 거꾸로 돌렸다고 할 수 있다. 비결은 따로 없다. 자신의 스윙이 마음에 들 때까지 맹훈련에 임한다. 이병규는 2014시즌 개막 하루 전 연습에서도 그라운드 타격이 끝난 후 홀로 실내 배팅에 들어갔다. 시즌 중 잠실 홈경기 때도 배팅 스피드가 좀 늦다 싶으면, 경기 후 실내 배팅을 한다.
박용택은 지난 2년 동안 팀의 요구에 맞춰 모험을 했다. 30대 중반을 앞두고 가장 타석에 많이 들어서는 리드오프가 된 것이다. 출루 후 주루플레이까지 생각하면 체력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비 포지션도 외야수 중 책임져야할 공간이 제일 넓은 중견수가 됐다. 그럼에도 박용택은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로 올라섰다. 2012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1번 타자로 100타석 이상 출장한 타자를 기준으로 삼으면 박용택은 타율 3할3푼5리 출루율 4할1푼9리로 이 부문 최상단에 있다.
2009시즌 FA 계약을 체결하며 함께 LG 유니폼을 입은 이진영과 정성훈도 마찬가지다. 둘 다 LG 유니폼을 입은 후 이전보다 꾸준한 활약을 펼치는 중이다. 이진영은 2009시즌부터 지금까지 타율 3할9리, 정성훈은 타율 2할9푼8리로 각각 통산 타율 3할4리, 2할9푼보다 높은 수치를 올리고 있다. 의심할 여지 없는 FA 모범생으로 매년 더 큰 책임감을 갖고 그라운드에 선다.
넷의 또 다른 공통점은 LG에 대한 애정이다. 모두 FA 자격을 얻었을 때 LG와 일사천리로 계약을 맺었다.
2010시즌 일본에서 돌아온 후 지난겨울 다시 FA 자격을 얻은 이병규는 2013년 11월 15일 구단과 협상 시작 5분 만에 계약서에 사인했다. 당시 이병규는 “금액이나 기간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구단에서 먼저 이렇게 손을 내밀어줘서 고맙게 생각할 뿐이다”고 말한 바 있다. 이병규는 LG 프랜차이즈 타율 안타수 타점 홈런 출루율 장타율 등 타격과 관련된 대부분의 부문에서 1위에 자리하고 있다.
박용택은 지난 2010년 FA 시장 야수 최대어로 꼽혔음에도 LG와 4년 계약을 체결했다. 박용택은 “사실 FA 신청을 하기 전부터 난 LG와 계약을 할 마음뿐이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LG야구를 보면서 야구의 꿈을 키워왔고, LG에 입단했다. 다른 마음을 먹을 이유가 없었다”며 “난 정말 LG에서 4년이 아니라 10년 20년 하고 싶다”고 애초에 다른 유니폼을 입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진영과 정성훈은 2012시즌이 끝난 후 두 번째 FA 자격을 얻었다. 당시 지방 모 구단은 LG와의 우선협상이 끝나자마자 이들을 잡기 위해 돈다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협상기간 첫 날부터 LG와 재계약을 체결했다. LG 입단 후 이루지 못했던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재도전을 다짐했다.
이렇게 베테랑 4인방의 그라운드 안팎에서의 모습은 LG 전체에 거대한 플러스가 되고 있다. 단순히 매 경기 안타를 터뜨려 팀의 승리를 이끄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류제국은 이진영을 두고 “진영이형은 투수들 버릇을 알아차리는데 달인이다. 진영이형과 같은 팀이라 정말 다행이다. 진영이형이 상대팀이었다고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고 혀를 내두른다. 정성훈은 지난해 잠실구장 내야 그라운드 재질이 바뀌자 30분 먼저 나와 수비 훈련에 임했다. 정성훈의 솔선수범으로 LG 내야진 모두의 훈련시간이 당겨졌고, 에러숫자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정성훈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스스로 3루 포지션을 반납, 팀을 위한 1루수 전향을 받아들였다. 국가대표 3루수가 먼저 자존심을 꺾고 팀을 바라본 것이다.
2014시즌 이진영의 유니폼에는 ‘캡틴’을 상징하는 'C'가 붙어있다. 2014년 신년회에서 구단 전체 투표를 통해 이병규에 이은 제2대 민선주장이 됐다. 이병규는 2년 동안 선수들이 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그라운드에서 집중하는 데에 신경 썼었다.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2013시즌, 언제나 이병규는 “우리는 올해 4강에 간다. 그러니까 다들 걱정하지 말자. 그리고 매일 딱 3시간 만 그라운드서 즐기고 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4시즌 이진영은 후배들의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이진영은 지난 3월 28일 “우리 베테랑 4명을 두고 F4라고들 하는 데 이게 좋은 의미만은 아니더라. 혹자는 F4중 최소 2명은 활약해야 LG가 이긴다고 한다.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팀은 좋은 팀이 아니다”며 “올해는 LG 어린 선수들도 잘 하는 것은 증명하는 해가 될 것이다. 스프링캠프부터 정말 후배들이 선배들을 잡아먹으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프링캠프서 이병규(7번)와 정의윤이 타격 메카니즘에 변화를 주며 시범경기서 맹타를 휘둘렀고, 김용의와 손주인도 부단히 땀을 쏟았다. 아직 올 시즌 5경기 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넷 중 셋이 3할대 타율을 기록 중이다.
한편 LG는 오는 9일부터 롯데와 사직 원정 3연전에 임한다. 박용택은 2007시즌부터 작년까지 사직에서 타율 3할3푼6리 OPS .933, 2013시즌에는 타율 4할5푼5리 OPS 1.213의 괴력을 과시했다. LG는 사직 3연전을 시작으로 5월 15일까지 휴식기 없이 11번의 시리즈에 들어간다. 박용택을 비롯한 베테랑 4인방의 대폭발로 LG가 올 시즌 첫 번째 분수령을 넘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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