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는 시프트를 쓰기도 어렵다”
지난 주말 문학 3연전에서 한화를 상대한 이만수 SK 감독은 상대 외국인 타자 펠릭스 피에(29, 한화)의 기량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렸다. 이 감독은 “타구의 질이 좋다”라면서 피에의 방망이 능력을 인정했다. 여기에 몇몇 외국인 선수들을 상대로 유행하고 있는 시프트 수비도 까다롭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이 감독의 이런 평가 속에 피에의 진가가 모두 담겨 있다. 공·수·주를 모두 갖춘 만능 플레이어의 예감이다.
오키나와 전지훈련 당시까지만 해도 부상으로 팀 관계자들과 팬들의 애를 태웠던 피에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최근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시범경기부터 불꽃타를 선보이며 기대감을 키웠던 피에는 그 상승세를 정규시즌까지 이어가는 중이다. 9경기에서 타율 3할7푼1리, 6타점, 1도루의 활약이다. 방망이는 경쾌하게 돌아가고 있고 거침없는 주루 플레이, 그리고 수비에서도 동시에 높은 공헌도를 인정받고 있다.

안타를 많이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타구의 질이 좋다는 평가에 더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 방향도 다양하고 결정적으로 발이 빨라 시프트의 맹점을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이만수 감독이 “시프트가 어렵다”라는 것도 한 것도 이런 복합적인 이유다. 강한 타구 자체가 많아 시프트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한 전력분석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잡아당기는 스윙에서 좋은 타구가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극단적으로 잡아당기는 스타일도 아니다. 루크 스캇(SK)이나 조쉬 벨(LG), 호르헤 칸투(두산) 등 거포 스타일의 선수들과는 차별성이 있다. 투수 유형별로 수비 위치를 조금씩 조정할 수는 있겠지만 피에를 잡기 위한 어떤 특별한 수비 진형을 만들기는 까다롭다”라고 분석했다.
실제 피에는 올 시즌 우측으로 13개의 타구를, 중앙으로 10개를, 좌측으로 8개를 보냈다. 안타만 분석하면 중앙 방면이 7개로 가장 많고 좌·우측이 각각 3개씩이다. 어느 한 쪽을 포기할 만한 상황이 안 된다. 쉽게 삼진을 당하는 유형도 아니다. 올 시즌 39타석에서 삼진은 단 3개 뿐이다. 기본적으로는 공격적인 성향의 타자지만 다소 거친 폼처럼 무턱대고 배트를 휘두르는 선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수비 범위도 강점이다. 현재 한화는 이용규가 아직 수비에 복귀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좌·우측 수비는 취약한 편이다. 그러나 중앙에 위치하는 피에가 넓은 수비 범위를 바탕으로 이를 잘 메워주고 있다는 평가다. SK의 한 선수는 “앞에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달려와 이를 잡아내더라. 타구 판단도 좋은 것 같았다”라고 인상을 설명했다. 지난해 트리플A 무대에서 38개의 도루를 성공시킨 주력은 폭풍전야 분위기다.
또 하나의 ‘성공한 이글스의 3번 타자’가 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한화는 전통적으로 3번 타순에 위치할 만한 유형의 외국인 타자들을 잘 뽑았다. 한국무대 7년 통산 타율 3할1푼3리, 167홈런, 108도루를 기록한 데이비스는 물론 비교적 최근 선수였던 2007년의 크루즈(타율 3할2푼1리, 22홈런, 85타점), 2008년 클락(타율 2할4푼6리, 22홈런, 25도루)도 평균 이상의 외국인 선수로 손꼽힌다.
데이비스는 당대 최고의 타자 중 하나였다. 크루즈는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수비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적어도 공격력 만큼은 정교함과 장타력을 모두 갖춘 타자였다. 클락은 한화 시절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그 후 히어로즈로 둥지를 옮겨 2년 연속 20-20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피에까지 네 선수는 모두 좌타자라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피에가 그 성공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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