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강)지광이를 1군에 올리고 로티노를 2군에 보내 20경기 정도 뛰게 하면서 준비시킬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지광이가 부상을 당하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넥센 히어로즈 염경엽 감독은 10일 목동 KIA전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유틸리티 요원인 외국인 선수 비니 로티노를 포수로 선발 투입하겠다는 결정은 했지만, 100% 신뢰하고 있지는 않았다. 로티노가 이날 선발투수인 앤디 밴헤켄과 말이 통한다는 점을 위안거리로 삼을 뿐이었다. 염 감독의 눈에 포수 로티노는 아직 준비가 필요한 선수였다.
염 감독의 걱정대로 출발은 불안했다. 로티노는 1회초 1사 1, 2루에서 김주찬의 3루 도루를 막지 못했다. 선발인 앤디 밴헤켄이 좌완인 관계로 염 감독은 도루보다 블로킹을 더 걱정했지만, 1루에서 2루를 훔치는 것과 달리 2루에서 3루로 가는 도루는 좌완투수가 갖는 이점이 없다. 전문 포수에 비해 미트에서 공을 빼는 동작이 느린 편에 속한 로티노는 김주찬의 도루를 저지하지 못했다.

7회초에도 마찬가지였다. 로티노는 1사 2루에서 도루하는 김선빈을 잡기 위해 3루에 공을 뿌렸지만, 공은 3루수 김민성이 잡지 못하는 곳으로 갔다. 로티노의 악송구에 무실점 행진을 하던 밴헤켄이 첫 실점을 기록할 수도 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전화위복이 일어났다. 공이 빠지는 것을 본 김선빈은 뒤늦게 홈으로 달렸으나 좌익수 문우람의 송구를 받은 로티노의 태그에 아웃되고 말았다. 3루 송구는 나빴지만, 로티노는 김선빈이 홈으로 파고드는 길목을 왼발로 차단한 뒤 송구를 정확히 받아 옆으로 빠져 돌아 들어오는 김선빈의 등을 터치했다. 이 플레이는 김선빈의 3루 도루로 기록됐고, 추가 진루를 허용하지 않아 로티노에게는 실책이 주어지지 않았다.
2개의 도루를 허용했지만 밴헤켄이 무실점 호투하는 과정을 도운 로티노는 7이닝 동안 홈 플레이트를 지키며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타석에서도 3타수 2안타로 3경기 연속 멀티히트를 기록한 로티노는 7회말 공격에서 대주자 유재신과 교체되며 경기를 마쳤다. 넥센은 밴헤켄-로티노 배터리의 활약을 앞세워 5-2로 승리했다.
넥센이 로티노를 갑작스럽게 포수로 투입한 것은 아니다. 로티노는 지속적으로 포수 훈련을 소화하고 있는 상태였다. 또한 염 감독도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로티노의 포수 출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다만 그 상황이 생각보다 빨리 왔을 뿐이다.
그리고 언제 올지 모를 기회에 대비하고 있던 로티노는 자신을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한국에 와 처음으로 마스크를 쓴 경기에서 로티노는 공수 양면의 재능을 모두 뽐냈다. 공격형 포수라고 하기엔 수비도 나쁘지 않았고, 수비형 포수라고 하기엔 최근 3경기에 타석에서 거둔 성과(11타수 7안타)가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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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