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완(42) SK 퓨처스팀 감독은 올해부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항상 ‘대성할 지도자감’으로 손꼽히기는 했지만 현장 첫 해는 스스로 말하듯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보이는 세심함은 베테랑 감독 못지않다. 이명기(27)의 포지션 변화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이명기는 10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이명기는 지난해 5월 8일 문학 두산전에서 펜스 플레이를 하다 발목을 다친 뒤 재활에만 매달려왔다. 하지만 겨우 내내 재활캠프를 오고가며 복귀를 꿈꿨고 결국 예상보다 좀 더 일찍 1군 무대를 밟았다. 맞히는 능력이 좋고 발이 빠른 이명기는 SK에서는 분명 희소가치가 있다. 장기적인 관점까지 고려하면 팀 내 기대는 더 커진다.
그런 이명기는 1군에 올라오기 전 퓨처스팀(2군)에서 15경기 정도를 소화했다. 피나는 재활을 통해 발목의 근력을 완성시킨 이명기는 연습경기, 퓨처스리그 일정에서 주로 리드오프로 출전하며 감각을 쌓았다. 그런데 포지션이 오락가락했다. 어느 날은 우익수, 어느 날은 좌익수로 뛰었다. 팀 사정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 이명기의 상품가치를 극대화시키려는 박 감독의 의중이었다.

이명기의 지난해 포지션은 수비 부담이 그나마 덜한 좌익수였다. 아직은 수비에서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런데 박 감독은 이명기에게 “우익수 자리에서 뛰어보지 않겠느냐”라고 제안했다. 이명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이명기는 우익수로 선발 출전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박 감독은 이에 대해 “이명기가 차후 1군에 올라갔을 때 좀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1군 라인업을 보니 루크 스캇이라는 외국인 선수가 좌익수로 뛸 수 있었다. 박재상 김상현 등 베테랑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우익수 자원은 부족했다. 우익수에서는 이명기가 1군에서도 충분히 상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이명기의 미래, 그리고 1군의 취약점 보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노린 계획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명기는 경기 중 좌익수로 이동하기도 했고 어느 날에는 좌익수로 선발 출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박 감독의 생각이 수없이 바뀐 것일까. 그런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배려가 숨어있다. 박 감독은 “아무래도 재활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수 아닌가. 수비에 나가는 거리를 최대한 짧게 해주고 싶었다”면서 “1루 쪽에 덕아웃이 있을 때는 우익수로, 3루 쪽에 덕아웃이 있을 때는 좌익수로 쓰곤 했다”고 미소지었다. 감독이 됐지만 제자이자 후배를 걱정하는 심정을 숨기지 못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명기는 “어쩐지 포지션이 바뀌더라”라고 웃었다. 그렇게 자신을 배려한 박 감독의 품을 떠난 이명기의 각오도 남다르다. 이명기는 “군대 때 2년을 쉬었다. 그 때와 비교하면 1년을 쉰 지금은 감이 좀 나은 것 같다”라고 웃으면서도 “박 감독님 밑에서 훈련을 많이 했다. 일단 아프지 않고 뛰는 것이 첫 번째 목표고 기회를 살려서 경기에 많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 대주자든 대수비든 100경기에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박 감독이 1군에 올라가는 이명기에게 한 마지막 말은 "이제는 2군에 내려오지 말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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