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의 본드녀. 봉준호 감독과 작업하기도 했던(영화 마더). 28살이지만 여태껏 전부 10대를 연기한 교복이 잘 어울리는. 이 모든 수식어를 벗을 만한 강력한 영화로 돌아온 '한공주'(이수진 감독)의 배우 천우희를 만났다. 강아지 같으면서도 고양이 같은, 이중적인 느낌을 가진 눈이 인상적이다.
2012년 10월경에 찍은 영화 '한공주'(17일 개봉)에서 주인공 한공주를 연기한 천우희는 영화의 일등공신이자 가장 큰 수혜자이다. 적어도 그를 '써니' 때보다 한층 더 배우로서 확실히 각인시킬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친구를 잃고 쫓기듯 전학을 가게 된 공주가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이야기를 그렸다.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상기시킨다. 아프지만 희망적이다. 제13회 마라케시 국제영화제와 제43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각각 대상격인 금별상과 타이거상을, 제16회 도빌 아시아 영화제는 심사위원상, 국제비평가상, 관객상 3관왕을 차지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심사위원이었던 프랑스 여배우 마리옹 꼬띠아르의 극찬은 유명하다.

"요즘 영화가 너무 좋다고 주변에서 말씀해주셔서 기분이 정말 좋아요."
인터뷰 당시까지 영화를 5번 봤다고. 하지만 볼 때 마다 감상이 다르고 여운이 남는 장면이 다르단다. 전날 VIP 시사회에 부모님이 오셨는데, 어떻게 보셨는지 물어봤냐고 하자 "아직 코멘트가 없으셨다. (부모님) 표정에서는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내용에 그 아픔을 연기해 낸 딸에게 즉각적인 소감을 말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분명 그 어려움을 아무렇지 않게 연기해 낸 배우인 딸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공주를 표현해 낸 천우희의 캐릭터 연기가 많이 회자된다. 전형적이거나 진부하지가 않다. 그런 험한 일을 겪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 아니며 꾹꾹 눌러담은 듯, 진짜 고등학생 같은 그의 연기는 영화를 몰입시키는 힘이 된다.
"감정을 표출해버리면, 시원할 수는 있을 거 같았어요. 그런데 사실적으로 표현하면 이 친구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죠.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거의 표현을 안 하고 표정을 지우고 무덤덤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연기를 할 때 내적으로 힘들고 갈등을 겪어도 내색을 최대한 하지 말아야지, 라고 했어요. 뭘 안 하려고 했죠. 다만 이 상황에 놓여져 있다고 계속 생각했어요. 진정성 있게 표현하기 위해 준비단계에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본 순간부터 '그냥 너무 좋다, 내가 할 거 같다'란 생각이 운명처럼 들었다는 그는 감독의 특별한 디렉션이 있었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감독님은 대부분 이렇다 저렇다 설명을 하시지 않고 '너는 어떻게 느꼈니?'라며 상황에 대한 제 느낌을 물어봐주셨어요. 그래서 이견은 크게 없었죠, 감독님과 내가 생각하는 게 비슷했던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공주를 연기하며 스스로 반성도 많이 했다는 그다. ""촬영을 하고 나서 반성을 많이 했다. 주변에 만약 이런 상황에 놓인 친구가 있었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그들(공주를 외면하거나 괴롭히는 사람들)하고 똑같지는 않았을까, 라는 죄책감이 느껴지더라. 만약 이러한 일, 아주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이고 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라고 영화를 통해 자신도 돌아보며 진지한 고민을 했음도 털어놨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이 남는 말 중 하나는 '선생님 어머니'다. "공주가 자신을 돌봐주는 옛 선생님의 모친에게 '선생님 어머니~'라고 부르는 장면이 좋더라"는 말에 그는 "맞다"라고 동의하며 미소지었다.
"목소리, 말 한마디에도 고등학생다움을 묻히려고 했어요. 같은 '네'라도 상대나 상황에 따라 느낌이 전부 다르잖아요? 최대한 고등학생 공주처럼 보이려고 했어요. 실제로 여고생들이 말 끝도 좀 흐리고 친구들과 어른들과 말 할 때 조금씩 다르잖아요? 그런 부분을 인지하며 연기했죠. 저 역시 시나리오에서 '선생님 어머니'란 표현을 봤을 때 무릎을 쳤어요. 정말 딱 맞는 '부름'인 거 같아요. 전 개인적으로 선생님 어머니의 등을 공주가 밀어 주는 장면을 참 좋아해요. 볼수록 편안하게 웃어요. 선생님 어머니에게 하는 '자고 가도 돼요?'란 대사도 좋아요."

'써니'의 본드녀가 아직까지 대중에게 강했다. 이에 '천우희는 셀 거 같다'라는 이미지도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성격도 세고 날카로울 거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오히려 두리뭉실한 편이다"라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물론 그런 면(센 면모)이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그리고 실제로도 욱할 때도 있지만 자주 화를 낸다거나 날을 세운다거나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오히려 할 말이 있으면 조곤조곤하게 할 말 다하는 성격이죠. 감독님도 '넌 참 조곤조곤 할 말 다한다'라고 말하시던걸요. 하하."
영화 '써니', 시트콤 '뱀파이어 아이돌, 영화 '우아한 거짓말', 그리고 '천공주'. 항상 10대 캐릭터를 연기하며 '여기에 갇히면 어떡하지'란 걱정도 솔직히 했다는 그는 또 다른 도전을 펼쳤다. 처음으로 20대, 정확히는 실제 나이와 같은 28살 여성을 연기하는 것. 부지영 감독의 영화 '카트'에서다. 처음으로 또래가 아닌 많은 대선배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폭풍 긴장과 함께 엄청난 배움을 얻었다는 그에게서 순간 무한 가능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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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호 기자 spjj@osen.co.kr